귀암정사
구암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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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구암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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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龜巖精舍 |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구미리 358-359번지 산144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기념물 제94호 |
지정(등록)일 | 1994년 4월 16일 |
분류 |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
수량/면적 | 3,611㎡(3필) |
웹사이트 | 구암정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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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기존 국문
이 건물은 의성김씨 구미리 입향조인 김근(金近, 1579~1656)의 덕을 기리기 위해 김근의 6대손 김굉(金㙆, 1739~1816)이 조선 정조(正祖) 15년(1791)에 건립하였다. 이 정사는 사주문, 정사,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주문 정면에 3칸 규모의 정사가 있으며, 정사 뒤에는 대문을 두어 사당인 영모사(永慕祠)로 통하게 하였다. 정사는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로 우물마루를 깐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이 있다. 대청과 온돌방 사이에 모두 쌍여닫이문을 달았다. 영모사는 정사보다 2년 뒤에 건립한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돌기단 위에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운 건물이다.
귀암정사의 배치형태는 18세기 이후 강학(講學)공간이 서원으로 확대되어 나가는 과정을 볼 수 있는 자료이다.
수정 국문
초고
구암정사는 의성김씨 중 구미리에 처음 들어와 정착한 입향조 김근(金近, 1579~1656)을 기리기 위해 지어졌으며, 김근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김근은 광해군 7년(1615)에 이곳에 터를 잡았으며, 이후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 정진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김근의 6대손 김굉(金㙆, 1739~1816)은 정조 15년(1791)부터 4년에 걸쳐 이곳에 정사 건물과 사당인 영모사(永慕祠)를 비롯한 여러 건물을 마련했다고 한다. 후에 서원으로 승격할 것을 염두에 두고 서원과 유사하게 경내 건물을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경내에는 사주문과 정사, 사당 건물만 남아 있다. 정사는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구조이며, 정조 17년(1793)에 완공된 사당은 담장을 둘러 영역을 구분하고 있다.
- 서남쪽으로 100m 가량 떨어진 곳에 김근이 살던 옛집의 터에 세워진 생담정사(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50호)가 있다.
1차 수정
구암정사는 조선시대의 학자인 김근(金近, 1579~1656)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정조 19년(1795)에 지어졌다.
김근은 안동 출신으로 인조 20년(1642)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고향에서 학문에 전념하였다. 구미리로 이주하여 초가를 짓고 은거하였으며, 이후 의성김씨 후손들이 구미리에 대대로 살게 되었다.
김근의 6대손 김굉(金㙆, 1739~1816)은 김근을 기리기 위해 정조 15년(1791)부터 4년에 걸쳐 사당, 강당, 동재와 서재 등 여러 건물을 마련하였다. 후에 서원으로 승격할 것을 염두에 두고 건물을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경내에는 정문, 정사, 사당인 영모사(永慕祠)만 남아 있다. 정사는 대청을 중심으로 양옆에 온돌방을 두었고, 사당은 담장을 둘러 별도의 영역으로 구분하였다.
구암정사에서 서남쪽으로 100여 m 떨어진 곳에는 김근이 살던 집터에 세워진 생담정사(경상북도 문화재자료)가 있다.
참고자료
- 구암정사,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333700940000&pageNo=1_1_1_1 -> 의성 김씨로 처음 이곳에 터전을 잡아 살기 시작한 김근(1579∼1656)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5대에 걸쳐 양양, 진성, 안망 등지를 옮겨다니던 생활을 청산하고, 광해군 7년(1615) 그의 나이 37세 때 터를 잡아 후손들이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선생은 인조 20년(1642) 진사시에 합격한 뒤 벼슬을 단념하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그를 가리켜 정현광 선생은 ‘유림노성(儒林老成)’이라 칭찬하였다. 그 뒤 후손인 김굉이 주도하여 정조 15년(1791)부터 4년에 걸친 공사 끝에 사당 건물을 비롯하여 동재·서재와 강당을 20여칸 규모로 마련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사당 건물인 영모사와 정사 2채만 남아 있다.
- 구암정사, 디지털안동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andong.grandculture.net/andong/toc/GC02400760 -> 귀와(龜窩) 김굉(金宏)이 오우당 김근의 학덕을 기리고자 건립을 추진하여 1791년 재사를 세우고, 1793년 별묘를 구성하였으며, 1795년(정조 19) 전체를 완공하였다. 구암정사는 홑처마 팔작지붕집으로 바로 뒤에 정면 3칸, 측면 1칸의 사당이 있다. 총 20여 칸의 규모로 묘우(廟宇)는 영모사(永慕祠), 동재는 치각(致慤), 서재는 양정(養正), 강당은 강수(講修)라 이름하였다. 기단은 35㎝ 높이로 자연석을 쌓은 다음, 그 위에 자연석 주초를 놓고 원주와 각주를 세웠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모두 8칸 집으로 중앙 4칸은 마루이고, 좌우에 2칸의 온돌방이 있다.
- 효와 후학의 정사(精舍), 안동의 생담정사와 귀암정사_181217, 겨울섬, 개인 블로그, 2018.12.20. https://gotn.tistory.com/620 -> 정면 4칸, 측면 2칸의 정사가 자리잡아 강학(講學)의 공간을 형로, 대청 전면에는 두리기둥을 세우고 주두 위에 무익공의 소로를 수장한 굴도리집인데, 가구는 견실한 5량가구로 종보 위에 제형 판대공을 세워 마루도리를 받게 하였습니다. / 정사(精舍)의 마루인 중당을 강수재(講修齋)라고 하고, 동쪽의 방을 양정재(養正齋), 서쪽 방을 치각재(致慤齋)라 각각 이름 하였습니다.
- 김근, 디지털안동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andong.grandculture.net/andong/toc/GC02401262 -> 1623년(인조 1)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파방되었고 1642년에 다시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관리로 임용되지 못하였다. 일찍이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귀미리 생담에 손수 송(松)·죽(竹)·매(梅)·국(菊)·연(蓮) 등 군자를 상징하는 다섯 가지의 식물을 심어 놓고 오우당(五友堂)이라 부르고는 소요자적하는 은거의 장소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