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정
삼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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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삼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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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檟亭 |
주소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수류길 32-19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0호 |
지정(등록)일 | 1985년 8월 5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삼가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삼가정은 류봉시(柳奉時)가 아들 류승현과 류관현의 교육을 위해 지은 서재 건물이다. 집 앞에 세 그루의 가죽나무를 심고 서재(書齋)를 지었다고 하여 삼가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원래 안동시 임동면 위리에 있었으나, 1987년에 임하댐을 건설하면서 현재 위치로 옮겼다.
건물은 퇴칸(退間: 안둘렛간 밖에다 딴 기둥을 세워 만든 칸살)을 둔 정면 네 칸, 옆면 한 칸 반 규모이나 퇴칸 앞쪽으로 마루를 더 확장한 모습이다. 중앙의 마루에는 문짝을 네 개 두었는데, 들어서 걸 수 있는 여닫이문(밀거나 당겨서 열고 닫는 문)과 쌍여닫이문(좌우 양쪽으로 문짝이 달려 있어 열고 닫을 수 있는 문)이다. 이 문을 닫아서 마루를 폐쇄할 수도 있다.
마당에는 불을 밝히기 위해서 돌로 만든 등(燈)이 있다. 마당에서 삼가정으로 드나들 때는 오른쪽에 있는 문으로 다니도록 하였다. 반대편인 왼쪽에 있는 작은 문은 산으로 통하는 문이다.
영문
Samgajeong Pavilion
Samgajeong Pavilion was first built in Wi-ri, Andong, in 1674 by Ryu Bong-si (1654-1709) for his sons Ryu Seung-hyeon (1680-1746) and Ryu Gwan-hyeon (1692-1764). The pavilion was moved in 1922 to Bakgok-ri, Andong, and in 1987 to its current location in Ilseon-ri, Gumi, due to the construction of Imha Dam.
Ryu Seung-hyeon and Ryu Gwan-hyeon, who studied in this pavilion,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719 and 1735, respectively, and were both renowned for their scholarly excellence. The brothers also devotedly taught and passed down knowledge to the family's younger generations.
Samganjeong Pavilion stands within the stone enclosure wall on the elevated land bordering Yonghwa Head House, the residence of the descendants of Ryu Seung-hyeon. It consists of a wooden-floored hall in the center, an underfloor-heated room on each side, and a wooden veranda along the front left and center. The lattice doors along the front of the wooden-floored hall can be lifted so as to join the space with the veranda. Standing next to Samganjeong Pavilion is Chimganjeong Pavilion, which is the detached quarters of Yonghwa Head House.
The name Samgajeong means “Pavilion of the Three Trees of Heaven” referring to the three Ailanthus altissima trees that once stood in front of the building.
영문 해설 내용
삼가정은 류봉시(1654-1709)가 아들 류승현(1680-1746)과 류관현(1692-1764)을 위해 1674년 안동 위리에 지은 서재이다. 1922년 박곡리로 옮겼고, 1987년에 임하댐을 건설하면서 현재 위치로 옮겼다.
이곳에서 공부한 류승현과 류관현은 각각 1719년과 1735년에 과거에 급제하였고 학문으로 명성을 떨쳤다. 두 형제는 선조들의 가르침을 가문 후손들에게 전승하는 데에도 힘썼다.
삼가정이라는 이름은 ‘가죽나무 세 그루의 정자’라는 뜻으로, 건물 앞에 심어졌던 세 그루의 가죽나무에서 비롯되었다.
삼가정은 마루를 중심으로 양옆에 온돌방을 두었고, 건물 앞쪽 전체에 툇마루를 두었다. 마루에는 문짝을 달았는데, 문을 들어올려 마루 전체를 개방된 공간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갤러리
참고자료
- 무성한 나뭇잎 풀가득 홰나물 그늘 : 용와 양파 노애 관련자료(『한국국학진흥원 소장 국학자료목록집 30 - 전주류씨 박실[朴谷] 수정재고택』, 한국국학진흥원, 2016.), 전주류씨 22세손 류병훈의 사랑방, 네이버 블로그, 2018.10.16. https://blog.naver.com/hyuni1121/221378979297
- 두 아들 도학 연마 뒷바라지 10년... 대표 명문가 성장, 대구일보, 2017.09.25. http://daegu01.kode.co.kr/newsView/idg2017092500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