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 고사부리성
정읍 고사부리성 Gosaburiseong Fortress, Jeongeu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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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정읍 고사부리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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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Gosaburiseong Fortress, Jeongeup |
한자 | 井邑 古沙夫里城 |
주소 |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 고부리 산1-1 |
지정(등록) 종목 | 사적 제494호 |
지정(등록)일 | 2008년 5월 28일 |
분류 |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
시대 | 백제 |
수량/면적 | 92,127㎡ |
웹사이트 | "정읍 고사부리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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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정읍 고사부리성은 해발 132m의 성황산 정상부 두 봉우리를 감싸고 있는 성으로 백제시대 처음 쌓고 통일신라 때 고쳐 쌓았으며, 조선시대 영조 41년(1765)에 관아가 현재 고부초등학교 자리로 옮겨질 때까지 활용하였다.
조선시대 전기까지는 돌로 쌓은 성이었으나 조선 후기에 흙으로 다시 쌓았다. 둘레는 1,050m이다. 지표조사와 발굴조사 결과 백제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여러 가지 유물과 건물터, 우물터, 물 저장소 등이 확인되었다. ‘상부상항(上部上巷)’이라 새겨진 백제시대 기와와 말을 탄 병사의 모습이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어 이곳이 백제시대 5방성 가운데 중방성의 터였음을 확인해 주고 있다.
- 지표조사: 유물의 존재, 분포, 성격 등을 파악하기 위해 땅 위에 드러난 유적, 유물을 훼손하지 않고 조사 기록하는 행위
- 상부 : 백제의 수도를 다섯 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눈 오부(상부, 전부, 중부, 하부, 후부)의 하나(지금의 ‘구’)
- 상항 : 오부의 각 부를 다시 다섯 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눈 오항(상항, 전항, 중항, 하항, 후항)의 하나(지금의 ‘동’)
영문
Gosaburiseong is a fortress encircling the two peaks of Seonghwangsan Mountain (132 m above sea level). It measures 1.05 km in perimeter.
Diverse artifacts, gate sites, building sites, and well sites were found in this fortress through a series of excavation surveys. These artifacts and remains date from the Baekje (18 BCE–660 CE) to the Joseon (1392-1910) periods. Among the excavated artifacts, roof tile shards inscribed with the names of Baekje’s local administrative areas suggest that this fortress was first constructed to house the local government office during the Baekje period. The fortress was used for many centuries as a local government office until 1765 when the office was relocated to the site of today’s Gobu Elementary School.
The fortress was originally built with stones, underwent a number of repairs and renovations, and was rebuilt as an earthen fortification during the late Joseon period.
영문 해설 내용
고사부리성은 해발 132m의 성황산 정상부 두 봉우리를 감싸고 있는 성이다. 둘레는 1.05km이다.
발굴조사 결과 이 성에서는 백제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여러 가지 유물과 문지, 건물터, 우물터 등이 확인되었다. 백제의 지방행정구역 이름들이 새겨진 기와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백제시대에 지방을 다스리기 위한 치소(治所)로 처음 지어졌다고 추정된다. 이후 이 성은 이곳에 있던 관아가 1765년에 현재 고부초등학교 자리로 옮겨질 때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처음 지어질 때는 돌로 쌓은 성이었으나, 오랜 기간에 걸쳐 여러 차례 고쳐지어졌고, 조선 후기에는 토성으로 다시 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