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죽헌고택
안동 죽헌고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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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안동 죽헌고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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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東 竹軒古宅 |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태장죽헌길 24 (서후면)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46호 |
지정(등록)일 | 2012년 10월 22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안동 죽헌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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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기존 국문
이 건물은 상해임시정부요인(上海臨時政府要人)으로 활약한 동농(東農) 김가진(金嘉鎭, 1846~1922)이 조선 고종(高宗) 23년(1886)년에 지은 집이나, 1890년 참봉(參奉) 죽헌(竹軒) 이현찬(李鉉贊)이 인수하여 현재 재사(齋舍)로 사용하고 있다.
이 집은 정동향으로 자리한 정면 5칸, 측면 4칸, 홑처마 3량가의 납도리집이다. 기둥의 높이를 달리하여 지붕의 높낮이를 조절한 재치가 돋보인다. 우측에 초가 방앗간이 별도로 설치되어 있다. 험준한 산중에서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돌로 담을 높게 쌓아 외부와 격리시키고 있는 것이 특이하며, 이러한 예는 좀처럼 찾기 힘들다. 전반적으로 조선후기의 전형적인 ‘口’자형 민가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건물이다.
수정 국문
초고
이 건물은 중국 상해에서 독립운동가로 활약한 김가진(金嘉鎭, 1846~1922)이 조선 고종 23년(1886)에 지은 집이다.
고종 27년(1890) 참봉 벼슬을 하던 부호(富豪) 이현찬(李鉉贊, 1851~1915)이 이 집을 인수했기 때문에 집의 이름은 이현찬의 호인 ‘죽헌(竹軒)’을 따서 부르게 되었다.
이곳은 재사로 이용되기도 하였으며, 2017년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지어졌다.
이 집은 기둥의 높이를 다르게 해 서로 연결된 지붕의 높낮이를 조절하여 특색을 더했으며, 전체적인 공간의 구성 방식이 조선 후기에 지어진 ‘ㅁ’자형 민가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고 평가받았다.
집 오른편에 있는 초가지붕 건물은 디딜방아가 있는 방앗간이며, 집 주변에는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돌을 이용해 높이 쌓은 담을 둘렀다.
- 김가진은 1886년 과거에 급제해 관직에 진출했으며, 1887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4년간 체류하기도 하였다. (집을 지은 직후 외국으로 파견되면서 이 집을 팔게 된 것으로 보임) -> 집을 지은 이유나, 매매가 이루어진 이유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면 좋을듯
-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안동 봉정사를 방문하는 길에 이 집에 잠시 들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봉정사와 죽헌고택을 연결하는 길을 '퀸 엘리자베스 로드'로 명명했다.
- 2017년부터 숙박시설로 이용되고 있어 향토문화대전의 형태(구조) 설명은 의미가 없을 것으로 보임. / 대문에서 바로 보이는 사랑채에는 툇마루를 덧달았다. 사랑채 가장 왼편에 낸 중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안채는 중앙의 대청과 좌우에 온돌방을 둔 구조이다. (왼쪽 안방 주인 거주, 오른쪽 방 숙박공간)
1차 수정
참고자료
- 죽헌고택, 디지털안동문화대전 http://andong.grandculture.net/andong/toc/GC02400949 -> 죽헌 고택은 1886년(고종 23) 김가진이 건립하였으며, 1890년(고종 27) 참봉 죽헌 이현찬이 인수하였다. 1989년 보수하였다.
- 안동 서후 ‘죽헌고택’ 새 단장 기념식, 불교공뉴스, 2017.6.13. http://www.bzero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32601 -> 죽헌고택은 경북의 “ㅁ”형의 대표적인 가옥이며 한옥의 편리한 모델로서 2년여에 걸쳐 경상북도와 안동시의 지원을 받아 새롭게 단장했다. 이 고택은 대한제국기 중추원 의장이며 독립운동가인 동농 김가진(1846-1922) 공이 1886년 지은 집을 그 당시 부호이며 참봉인 죽헌 이현찬(1851-1915) 공이 인수해 재사로 이용해 왔다.
- (참고) 안동여행은 안동 죽헌고택으로 – 죽헌고택 숙박예약 페이지 https://andongtour.modoo.at/?NaPm=ct%3Dkzecrcz4%7Cci%3Dcheckout%7Ctr%3Dds%7Ctrx%3D%7Chk%3D657781d214cd1dceabd9bf7fc02d945f0248c52e -> 항공사진 있음(ㅁ자형 지붕 강조)
- (참고) 안동 고택체험 죽헌고택, 여행과 캠핑으로 돋아나기,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pressinfo/221311818815 -> 실제 고택 체험자 후기(사진 상세)
- 김가진,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김가진 -> 세도가인 안동 김씨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서얼이었기에 과거에 응시할 수 없었다. 1894년 갑신정변 이후 적서 차별이 철폐되자 1886년 늦은 나이에 정시문과(庭試文科) 병과(丙科)로 급제, 홍문관수찬 (弘文館修撰)이 된다. 1887년 5월, 주차일본공사관참찬관(駐箚日本公使館參贊官)으로 주일판리대신(駐日辦理大臣) 민영준을 따라 일본 동경으로 간다. 4년간 동경(東京)에 주재했고, 1891년 귀국, 안동부사(安東府使)를 지내고 1893년 우부승지(右副承旨)에 임명되었다. 1896년 7월, 독립협회(獨立協會)의 창설에 참여하며 위원으로 선임된다. 독립문(獨立門)과 독립공원을 조성하는데 기여하였고,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에 가담했다. 독립문 현판석의 ‘독립문’ 글씨를 한자와 한글로 썼다. (일제강점후 조선귀족령에 의해 남작작위가 주어졌으나 반납했고, 이후 독립운동에 가담했다.) 1919년 의친왕 망명기도사건에 가담하였고, 자신 역시 탈출,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하였다. 1922년 7월 4일 77세를 일기로 상하이에서 순국했다. 김가진의 아들 김의한과 며느리 정정화는 각각 독립장과 애족장을 서훈받은 독립운동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