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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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구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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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삼구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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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龜亭 |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지풍로 1975-1 (소산리)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3호 |
지정(등록)일 | 1985년 12월 30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삼귀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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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기존 국문
이 건물은 조선 연산군(燕山君) 2년(1496)에 김영수(金永銖, 1446~1502)가 80여세 되는 어머니를 즐겁게 해드리고자 건립한 것으로 여러 차례 보수와 중건으로 오늘에 이르렀다. 삼구정이란 거북이 모양의 돌이 3개가 있어서 붙인 것으로 거북은 십장생 중의 하나이므로 어머님이 거북이처럼 오래 살기를 기원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 전체에 우물마루를 놓았다. 이 건물은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중수와 중건을 거치면서 조금 훼손되었지만 대부분 변함 없이 유지되어 조선 초기 정자건축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수정 국문
초고
이 정자는 김영수(金永銖, 1446~1502)와 그의 형제들이 늙으신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조선 연산군 2년(1496)에 처음 지은 것이다. 이후 여러 차례의 보수를 거쳐 1947년 지금의 정자 건물이 다시 지어졌다.
정자가 있는 소산마을은 안동김씨의 집성촌으로, 김영수는 안동 김씨 가운에 이 마을에 처음 들어온 김삼근(金三近, 1390~1465)의 손자이다.
정자는 네 면을 모두 개방해 마을을 비롯한 주변 경치가 한눈에 보이도록 했으며, 전체에 우물마루를 시설했다.
정자의 이름은 뜰에 있는 3기의 바위가 장수를 상징하는 동물 거북이의 모습과 비슷해 보이는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노모의 장수를 기원하면서 이렇게 명명했다고 한다.
- 예천 권씨는 여름철이 되면 집에서 나와 이 언덕의 나무그늘에서 쉬기를 즐겨했다. 이를 본 아들들이 힘을 모아 88세의 노모를 위해 1496년 이곳에 정자를 세웠다.
- 현판의 글씨는 이종준(?-1499)이 썼고, 당시 문장으로 이름났던 성현(1439-1504)이 기문을 남겼다.
- 허백당 성현(1439∼1504)이 쓴 삼구정 기문에, 형제들이 효자로 이름난 노래자(老萊子)처럼 색동옷을 입고 재롱을 피워 노모를 즐겁게 해 드린 광경이 잘 묘사되어 있다.
- 뜰에 있는 3기의 바위들은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로 추정하기도 하며, 지금은 ‘삼구석’이라고 부른다.
- 용재 이종준이 쓴 편액을 비롯해 이곳에 걸려 있던 현판 34점의 원본은 현재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되어 있다.
- 김영수의 후손인 김상헌은(안동김씨 장동파의 파조가 된 김영수의 둘째 아들 김번이 김상헌의 증조부이다.) 병자호란이 끝난 후 소산마을에 들어왔고, 이 때 이 정자에 올라 주변 경관 중 8곳을 꼽아 ‘삼구정 팔경’을 정하기도 했다.
1차 수정
참고자료
- 삼귀정,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113702130000&pageNo=1_1_1_1 ->사헌부 장령을 지낸 김영수(1446∼1502)가 88세의 늙은 어머니를 즐겁게 해드리고자, 조선 연산군 2년(1496)에 지은 정자이다. 그 뒤 여러 차례 보수하고 1947년에 다시 지음으로써 오늘에 이른다.
- 삼구정, 디지털안동문화대전 http://andong.grandculture.net/andong/toc/GC02400812 -> 서측 담에 둔 일각대문을 들어서면 삼구정이 자리 잡고 있고, 그 앞 왼쪽으로 삼구석이 보인다. 비교적 큰 잡석으로 기단을 쌓았고, 초석은 자연석을 사용하였으나 2개소에는 탑의 옥개석이 사용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 전부를 우물마루로 시설하였다.
- [정자] 85. 안동 삼구정(三龜亭), 경북일보, 2017.9.15. http://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04264 -> 삼구정은 김계권의 아들 김영전 김영추, 김영수 형제가 88살의 노모 예천권씨를 위해 마을 입구의 나즈막한 언덕, 동오동산에 지은 정자다. 예천 권씨는 여름철이 되면 집에서 나와 이 언덕의 나무그늘에서 쉬기를 즐겨했다. 이를 본 아들들이 힘을 모아 1496년 이곳에 정자를 세웠다. 현판 글씨는 《용재유고》를 쓴 용재(慵齋) 이종준(李宗準 출생년 미상~ 1499)이 썼다. / 3개의 바위는 거북 3마리가 정자를 등에 진 것 같은 모습이다. 이 바위는 작은 돌 두 개 위에 판석을 얹은 형태인데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로 추정하기도 했다. 바위를 굳이 거북모양으로 본 것은 거북이 십장생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노모의 장수를 염원하는 자식들의 마음이 전해온다. / 정자 안은 조선의 내로라 하는 문장가들의 기문과 시문이 가득하다. 기문은《용재총화》의 저자 용재(慵齋) 성현(成俔, 1439∼1504)이 썼다. / 병자호란때 결사항전을 주장했던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은 장동김씨 파조인 김번의 증손자이다. 그는 병자호란이 끝나자 소산마을에 들어와 김번의 옛집을 누각으로 고치고 청나라를 멀리한다는 뜻으로 청원루라 이름했다. 그때 가까이 있는 삼구정에 올라 인근 경치를 돌아보며 8곳 아름다운 경관을 정하고 ‘삼구정팔경(三龜亭八景)’이라 불렀다. 김상헌의 ‘삼구정 팔경’을 받아 계곡(谿谷) 장유(張維)와 상촌(象村) 신흠(申欽)이 ‘삼구정팔영(三龜亭八詠)’을 지었다. 이른바 ‘계택상월(谿澤象月)’ 중 2명의 대문장가가 시를 쓴 것이다.‘계택상월’은 조선 중기 네 사람의 문장가로 장유와 신흠, 택당(澤堂) 이식(李植)과),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를 말한다.
- 국학진흥원, 안동 삼구정 현판 34점 인수, 경북일보, 2010.4.22. http://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484888 -> 삼구정은 1496년(연산군 2) 안동김씨 소산 입향조 김삼근의 손자이자 사헌부장령을 지낸 김영수가 백씨 김영전(사헌부감찰)과 중씨 김영추(수원부사)와 상의해 건립한 정자이다. 삼구정 이름은 이곳에 거북 모양의 고인돌 3개가 있어 붙여진 것으로, 노모께서 거북처럼 장수하고 돌처럼 견고하게 지내실 것을 바라는 뜻이 있다. 허백당 성현(1439∼1504)이 쓴 삼구정 기문에, 형제들이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가까운 고을 수령으로 부임해 왔을 뿐만 아니라, 효자로 이름난 노래자(老萊子)처럼 색동옷을 입고 재롱을 피워 노모를 즐겁게 해 드린 광경이 잘 묘사되어 있다. 현판은 용재 이종준이 쓴 삼구정(三龜亭)편액과 허백당 성현의삼구정기를 비롯하여 김극검, 신용개, 류중영 등 많은 사람들이 쓴 시판들이다. 특히, 청음 김상헌(1570∼1652)이 한문4대가의 한 사람인 상촌 신흠에게 요청해 쓰게 한 삼구정팔경시와 이에 대해 김상용, 류근, 홍서봉 등 당대 이름난 문사들의 차운시가 포함되어 있다.
- (참고)예천 선몽대와 안동 삼구정, 데미안, 다음 블로그 https://blog.daum.net/kts450/7398583) -> 21년 8월 작성(현장 사진 있음) / 블로그 내용은 경북일보 보도 자료와 동일,
- (참고) 용재공 이종준을 기리며, 너에게 남기고 싶은 이야기, 다음 블로그 https://blog.daum.net/love2poem/15602531 -> 1489년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죽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