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세성산성
천안 세성산성 Seseongsanseong Fortress, Cheon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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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천안 세성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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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Seseongsanseong Fortress, Cheonan |
한자 | 天安 細城山城 |
소장처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성남면 화성2길 43 (화성리) |
지정(등록) 종목 | 충청남도 기념물 제105호 |
지정(등록)일 | 1997년 8월 5일 |
분류 |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
시대 | 삼국시대 |
수량/면적 | 23,852㎡ |
웹사이트 | 천안 세성산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천안 세성산성은 천안시 동남구 성남면 화성리 산 25번지 세성산 산꼭대기에서 중턱에 걸쳐 돌로 쌓은 성이다. 세성산은 해발 219m의 나지막한 구릉이지만 주변 지역을 한눈에 볼 수 있어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산성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출토된 유물과 성벽을 쌓은 기법으로 보아 대체로 백제 때 처음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세성산성은 일반적인 다른 산성과 달리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성은 세성산 꼭대기를 중심으로 쌓았는데, 전체 둘레는 280m에 불과하다. 외성은 내성과 북쪽 벽을 공유하면서 세성산 중턱까지 이어진다. 성벽 전체가 이미 무너진 상태지만 서쪽 벽의 극히 일부가 남아 있다. 여기에서 보면 돌을 벽돌처럼 다듬어 한 단 한 단 수평을 맞추어 바른층쌓기 방식으로 쌓았음을 알 수 있다. 외성벽의 둘레는 680m에 이른다.
산성에 딸린 시설로는 문 터와 치성(雉城)*, 건물 터를 들 수 있다. 문 터는 동문 터와 서문 터가 남아 있고, 치성도 동쪽 치성과 서쪽 치성이 남아 있다. 건물 터는 산꼭대기와 중턱에 있는데, 산꼭대기에 있는 건물 터가 가장 크고, 중턱에 있는 건물 터는 위치상 집수지**일 가능성이 있다.
이 산성은 조선 초부터 사용하지 않았지만 동학농민운동 당시 천안 세성산 전투가 일어난 역사적인 현장이다.
- 치성: 성 위에 낮게 쌓은 담. 여기에 몸을 숨기고 적을 감시하거나 공격하거나 한다.
- 집수지: 흐르는 물 또는 빗물을 저장하는 지역.
영문
Seseongsanseong Fortress, Cheonan
Seseongsanseong Fortress was built of stone around the peak and slope of Seseongsan Mountain. Seseongsan Mountain measures only 219 m above sea level, but it was a very strategic point of defense as it overlooks the surrounding area. As no excavations of the fortress have been conducted, the exact period of its construction is unknown. However, based on the artifacts discovered in the vicinity and the construction technique of the walls, the fortress is presumed to have been first built by the Baekje kingdom (18 BCE–660 CE).
The fortress consists of an inner and outer section. The inner section is located around the mountain peak and measures 280 m in circumference. The outer section was built to the south of the inner section to enclose the side of the mountain. It shares its northern wall with the inner section and measures 680 m in circumference. The walls were constructed of stone bricks that were laid in horizontal rows. All of the fortress walls have collapsed, apart from a very small section in the west.
Along the fortress walls, the sites of various structures were discovered, such as an east gate, a west gate, an east bastion, a west bastion, and two buildings. The building site on the top of the mountain is larger than the one along the slope, which is presumed to be the site of a water basin.
At the time of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of 1894, a peasant army assembled here and fought against the government troops but was defeated.
- 산꼭대리 건물터와 중턱 건물터에 대한 질문이 있습니다. 일단 산꼭대기 건물터가 '가장 크다'고 표현되면 3개 이상인 건물터가 있는 것처럼 이해가 되는데, 다른 내용에 의하면 건물터 2개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왜 '더 크다'라고 표현을 안 한 건지 이해가 안 되는 거죠) 그리고 짐수지는 건물터로 볼 수 있나요? 집수지는 연못처럼 파 있는 그런 구조물은 아닌가요? building으로 해야 하는지 (wooden) structure로 해야 하는지요...?
영문 해설 내용
세성산성은 세성산 산꼭대기에서 중턱에 걸쳐 돌로 쌓은 성이다. 세성산은 해발 219m의 나지막한 구릉이지만 주변 지역을 한눈에 볼 수 있어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산성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축성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출토된 유물과 성벽을 쌓은 기법으로 보아 대체로 백제 때 처음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세성산성은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성은 세성산 꼭대기를 중심으로 쌓았고, 둘레는 280m이다. 외성은 내성과 북쪽 벽을 공유하면서 세성산 중턱까지 이어지도록 쌓았고, 둘레는 680m이다. 돌을 벽돌처럼 다듬어 한 단 한 단 수평을 맞추어 쌓았다. 성벽 전체가 무너진 상태이며, 서쪽 벽의 극히 일부가 남아 있다.
산성 주변에서는 동문 터, 서문 터, 동쪽 치성, 서쪽 치성, 건물 터 등이 발견되었다. 건물 터는 산꼭대기와 중턱에 있는데, 산꼭대기에 있는 건물 터가 가장 크다. 중턱에 있는 건물 터는 집수지일 것으로 추정된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농민군이 이곳에 집결하여 관군과 접전을 벌였으나 패배하였다.
참고자료
- 천안 세성산성, 디지털천안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cheonan.grandculture.net/cheonan/toc/GC04500587
- 목천 세성산 전투, 디지털천안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cheonan.grandculture.net/cheonan/toc/GC0450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