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천서당

HeritageWiki
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1년 12월 14일 (화) 12:58 판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이동: 둘러보기, 검색
청천서당
Cheongcheonseodang Village Study Hall
청천서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청천서당
영문명칭 Cheongcheonseodang Village Study Hall
한자 晴川書堂
주소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칠봉2길 66-7 (칠봉리)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61호
지정(등록)일 1991년 5월 14일
분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당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2동
웹사이트 청천서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서당과 서원은 조선 시대의 사립학교로, 서당은 초등교육을 맡았으며 서원에서는 고등교육이 이루어졌다.

청천서당은 조선 시대의 학자이며 문신인 동강 김우옹(東岡 金宇顒)을 모시던 청천서원이었으나, 조선 고종 때인 1868년 서원철폐령으로 헐린 후, 후손인 김호림이 종택의 사랑채를 고쳐, 서원을 대신할 교육기관인 서당으로 활용하면서 붙인 명칭이다. 청천서원은 조선 영조 5년(1729)에 처음 세워졌으며, 회연서원과 함께 성주를 대표하는 서원이었다. 1992년 옛 서원 자리에 복원되었다.

근현대의 유학자이며 독립운동가인 김창숙은 김호림의 아들로서, 1910년 청천서당을 성명학교라고 부르고 애국계몽운동*을 위한 학교로 활용하였으며, 일제강점기에 한동안 거주하기도 했다. 청천서당은 1991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청천서당은 강당과 대문채, 관리사로 이루어져 있다.


  • 애국계몽운동: 일본의 침략에 맞서 1905~1910년 사이에 전개된 국권 회복 운동

영문

Cheongcheonseodang Village Study Hall

A village study hall, called seodang in Korean, was a local private education institution that was established to teach classical Chinese and elementary Confucian classics.

The history of Cheongcheonseodang Village Study Hall begins with the establishement of Cheongcheonseowon Confucian Academy in 1729, which honored Kim U-ong (1540-1603), a civil official and scholar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In 1868, when most shrines and Confucian academies were shut down by a nationwide decree, Cheongcheonseowon Confucian Academy was demolished. At this time, Kim Ho-rim, a descendant of Kim U-ong, repaired the men’s quarters of the family’s head house, which was about 150 m away from the Confucian academy, and began to use it as a village study hall. In 1992, Cheongcheonseowon Confucian Academy was built anew at its original location due to its significance and a representative Confucian academy of Seongju.

This building was resided in by Kim Ho-rim’s son Kim Chang-suk (1879-1962), who was an independence activist and educator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In 1910, he renamed the study hall Seongmyeong School and used it as an educational space for the Patriotic Awakening Movement.

The complex consists of a gate quarters, a lecture hall, and a custodian’s quarters.

영문 해설 내용

서당은 마을 단위로 설립한 초등 단계의 사설교육기관으로, 주로 유학에 바탕을 두고 한문을 가르쳤다.

청천서당은 원래 조선시대의 문신이자 학자인 김우옹(1540-1603)을 기리기 위해 1729년에 세운 청천서원에서 시작되었다. 1868년 서원철폐령으로 청천서원이 헐리자, 김우옹의 후손인 김호림이 서원에서 약 150m 떨어진 종택의 사랑채를 고쳐 서당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청천서원은 성주를 대표하는 서원이었으며, 1992년 원래의 자리에 다시 세워졌다.

김호림의 아들이자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운동가, 교육가인 김창숙(1879-1962)이 이곳에 한동안 거주하기도 했다. 그는 1910년 청천서당의 이름을 성명학교로 바꾼 후 애국계몽운동을 위한 교육 공간으로 활용하였다.

현재 경내에는 대문채, 강당, 관리사가 있다.

참고자료

  • 청천서당,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1_1&ccbaCpno=2113702610000 -> 청천서당은 동강 김우옹 선생을 제사지내던 집으로 조선 영조 5년(1729)년에 지어졌다. 처음에는 청천서원이라는 이름으로 회연서원과 함께 성주지역의 중심서원이었으나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철거 되었다. 그 후 동강의 12대 후손인 김호림에 의해 청천서당으로 이름을 바꾸어 다시 지었다. 1910년에는 심산 김창숙 선생이 청천서당을 성명학교라고 하고 애국계몽운동을 위한 학교로 활용되기도 하였고, 김창숙 선생이 한때 머물던 장소이기도 하다.
  • 혼자 된 며느리에게 담배 가르친 시아버지, 오마이뉴스, 2015.6.20.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18101 -> 심산이 태어난 사도실 마을 입구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답사단을 기다리는 동안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마을 어귀로 들어서면 왼쪽으로 생가가, 오른쪽 길섶 동강의 불천위(不遷位)사당과 어깨를 맞댄 고가가 있다. 심산이 1910년에 연 성명학교(星明學校)다. 성명학교는 동향으로 배치된 정면 5칸, 측면 1칸 반의 팔작집이다. 고종 때 청천서원이 훼철되자 심산의 부친 김호림이 종택의 사랑채를 고쳐 청천서당(晴川書堂)으로 중건했고, 심산이 여기에 성명학교를 연 것이다. 심산은 '김창숙이 나고 청천이 망하고 말았다'는 완고한 유림의 반대를 무릅쓰고 개교를 강행했다. 2칸 대청 안벽에는 '청천서당' 현판이, 대청 앞 기둥에 '성명학교' 현판이 걸렸다.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2칸, 오른쪽에는 1칸 온돌방을 들였다.
  • 청천서원, 렌즈로 본 일상,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ds1265/222014559573 -> 청천서원 사진 / 청천서당 공사중 모습(2020년 작성)
  • [우리동네 이야기 속으로] 47. 성주 사도실마을, 경북일보, 2021.8.https://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81807 -> 마을 전경 사진 보면 보수 끝난 듯함.
  • (참고) 속자치통감강목판목,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1_1&ccbaCpno=2113702590000


  • 서당이 위치한 사도실마을은 의성김씨 후손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다.
  • 서당의 동쪽 뒤편에는 김창숙의 생가(경상북도 기념물 제83호)가 자리하고 있다. 마을 안쪽에는 유림과 후손들이 힘을 합쳐 1992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한 청천서원이 있다. 현판 글씨는 백범 김구 선생의 친필이며, 서원 내에 있는 경정각에는 김우옹이 1589년의 옥사에 연루되어 회령으로 유배되었을 때 중국 송나라 태조부터 명나라 태조까지의 역사를 정리하여 편찬한 『속자치통감강목』의 목판이 보관되어 있다.
  • 청천서당은 2020년에 대대적으로 수리되었다.(검색된 내용들을 보면 2020년에 수리가 완료된 것으로 보임/ 확인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