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찬 창의유적지
임병찬 창의유적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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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임병찬 창의유적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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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林秉瓚 倡義遺蹟址 |
주소 | 전라북도 정읍시 산내면 종성리 276-1 |
지정(등록) 종목 | 시도기념물 제92호 |
지정(등록)일 | 1998년 1월 9일 |
분류 | 유적건조물/인물사건/역사사건/역사사건 |
시대 | 일제강점기 |
수량/면적 | 일원(8,292㎡) |
웹사이트 | "임병찬 창의유적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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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임병찬 창의유적지는 대한제국 시기에 임병찬이 의병을 훈련하던 곳이다. 낙안군수를 지낸 임병찬은 이곳에 사당을 지어 공자를 모시고 후진을 양성하면서, 한편으로 일본의 침략에 대비하여 의병을 훈련하였다. 마침내 최익현을 스승으로 모시고 무성서원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나 순창에서 신식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을 당해내지 못하고 해산했다. 그 뒤 의병들은 전국으로 흩어져 항일독립운동의 모체가 되었다. 이곳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어났던 의병들의 의로운 숨결이 느껴지는 유적지이다.
- 창의: 의병을 일으킴
영문
Historic Site of Im Byeong-chan's Civilian Army
This is the site where Im Byeong-chan (1851-1916), a leader of civilian army, trained his soldiers to fight against the colonial Japanese.
In 1893, Im Byeong-chan established a shrine for Confucius at this location, where he also educated his followers. He planned civilian army independence activities and encouraged his followers to train in archery and horse riding.
One year after the forced Japan–Korea Treaty of 1905, which made Korea a protectorate of Japan, Im led his army, raised at Museongseowon Confucian Academy in Jeongeup, in an uprising against Japan. However, he was arrested by the Japanese and was exiled to Tsushima Island. He continued his involvement in the independence movement until he was arrested again in 1914, after which he died in exile at Geomundo Island.
The stele on this site was erected by his descendants.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임병찬(1851-1916)이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의병을 일으켜 훈련하던 곳이다.
임병찬은 1893년 이곳에 공자의 사당을 짓고 제자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또한 의병활동을 계획하여 제자들에게 활쏘기와 말타기 등을 익히도록 했다.
을사조약이 체결된 직후인 1906년 정읍 무성서원에서 의병을 일으켜 전투에 나갔으나, 체포되어 대마도로 유배되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항일운동에 참여하다가 1914년 체포되었고, 거문도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죽었다.
이곳에 있는 기념비는 임병찬의 후손들이 세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