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죽원재사
밀양 죽원재사 Jugwonjaesa Ritual House, Mirya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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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밀양 죽원재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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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Jugwonjaesa Ritual House, Miryang |
한자 | 密陽 竹院齋舍 |
주소 | 경상남도 밀양시 산외면 다원2리2길 39 (다죽리)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84호 |
지정(등록)일 | 2000년 1월 25일 |
분류 |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밀양 죽원재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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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재사는 학문이나 덕행, 충효 등이 뛰어난 인물을 추모하기 위해 묘소나 사당 옆에 지은 건축물이다. 죽원재사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팔공산성 등에서 왜적과 싸운 오한 손기양(聱漢 孫起陽)을 기리기 위해 1753년에 후손들이 세웠다.
손기양은 1588년 과거에 급제하면서 벼슬길에 올랐고 전란 후에는 성균관 전적*, 울주 판관과 영천 군수 등을 지냈다. 광해군(1608∼1623 재위) 때 창원 부사를 지내다 정치가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은둔했다. 그의 호 ‘오한’은 ‘못 들은 척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나라에서 벼슬을 내려도 사양하고 단장천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별장을 짓고 낚시를 하면서 학문에 전념했다. 『배민록』과 『철조록』을 남겼다.
현재의 재사는 팔작지붕*에 정면 7칸, 측면 3칸 규모로 1956년 고쳐 지었다. 사당인 청절사(淸節祠)와 삼문(三門), 치엄문(致嚴門)은 모두 맞배지붕*이다.
- 전적(典籍): 조선 시대에 성균관의 학생을 지도하는 일을 맡아보던 정육품 벼슬
- 팔작지붕: 위 절반은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고 아래 절반은 네모꼴로 된 지붕
- 맞배지붕: 건물의 모서리에 추녀가 없이 용마루까지 측면 벽이 삼각형으로 된 지붕
영문
Jugwonjaesa Ritual House, Miryang
Jugwonjaesa is a ritual house used for the preparation of ancestral rituals for the scholar Son Gi-yang (1599-1617). The ritual house was established by Son’s descendants in 1753 and built anew in 1956. It is located in Dawon Village of Dajuk-ri, which has been home to many generations of the Milseong Son Clan.
Son Gi-yang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588 and began his service as a civil official. When Japan invaded Korea in 1592, he returned home to Miryang where he led a civilian army against the enemy. During the tyrannical rule of King Gwanghaegun (r. 1608-1623), Son resigned from his post and returned to his hometown where he focused on his studies and enjoyed fishing, declining all new appointments to civil service. He took the pen name Ohan, meaning “one who pretends not to hear.”
To the left of the ritual house is Cheongjeolsa Shrine, where Son Gi-yang’s spirit tablet is held.
영문 해설 내용
죽원재사는 조선시대의 학자 손기양(1599-1617)의 제사를 준비하기 위한 재사이다. 1753년에 후손들이 처음 세웠으며, 지금의 건물은 1956년에 고쳐 지었다. 재사가 위치한 다죽리 다원마을은 밀성손씨의 집성촌이다.
손기양은 1588년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향인 밀양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켜 활약하였다. 광해군(재위 1608-1623) 때 정치가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으며, 벼슬이 내려져도 사양하고 낚시를 하면서 학문에 전념하였다. 그의 호 ‘오한’은 ‘못 들은 척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재사 왼편에는 손기양의 위패를 모신 사당 청절사가 있다.
참고자료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 284호 밀양 죽원재사, 밀양시 블로그 날 좀 보소 밀양,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miryangsi/222329627188 -> 죽원재사의 편액 글씨는 채제공이 쓴 것이라고 한다.
- 죽원재사, 두산백과 https://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797652 -> 죽원재사는 1753년(영조 29)에 손기양의 5세손인 죽포(竹圃) 손사익(孫思翼)이 별묘(別廟)와 함께 그 옆에 세운 건물이다. 그뒤 건물이 노후하고 경내가 황폐하여 후손들이 1956년에 다시 고쳐 지어 지금과 같이 정비되었다. 정면 7칸, 측면 3칸 규모로 치엄문·삼문·정열사 등이 함께 배치되어 있으며, 팔작지붕이다
- 밀양 죽원재사, Pleasure from Emptiness, 다음 블로그 https://blog.daum.net/hanulh/1347
- 이창우의 내청춘 산에 걸고, 개인 블로그 https://yahoe.tistory.com/558 -> 재사 배면 사진 있음(콘크리트로 보강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