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익선생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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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익선생 묘
Tomb of Jo Ik
조익선생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조익선생 묘
영문명칭 Tomb of Jo Ik
한자 趙翼先生 墓
주소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 산33-1
지정(등록) 종목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84호
지정(등록)일 1987년 12월 30일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봉토묘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97,887㎡
웹사이트 조익선생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조익 선생 묘는 조선 시대의 문신이자 학자인 포저 조익(浦渚 趙翼, 1579~1655)과 부인 성주 현씨의 무덤이다. 묘역은 2단으로 되어 있는데, 위의 묘가 조익과 부인의 합장묘이고 아래의 묘는 조익의 부모인 조영중(趙瑩中, 1558~1646)과 해평 윤씨의 합장묘이다.

조익은 성리학의 대가로 예학과 서화에 뛰어났던 인물로 1602년(선조 35_ 과거에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나, 광해군(1608~1623 재위_이 의붓어머니인 인목대비(1584~1632_를 폐위*하여 서궁(지금의 덕수궁)에 가두어 놓자 벼슬에서 물러나 신창(지금의 아산 지역)으로 이주하여 초가를 짓고 학문 연구에 몰두한 것이 예산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이다.

1623년 인조(1623~1649 재위_가 왕위에 오르자 다시 관직에 나아가 좌의정까지 올랐다. 사망한 후에 충청도 동화산 일대에 모셨다가 현종 때(1660)에는 신창 도고산 일대로 묘를 옮겼고, 1690년(숙종 16)에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묘의 아랫부분을 둘러싼 돌에는 ‘신향(辛向)’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묘소가 동남쪽을 등지고 서북쪽을 향했다는 뜻이다.


  • 폐위: 왕비 등의 자리를 폐함.

영문

Tomb of Jo Ik

This is the tomb of the civil official and scholar Jo Ik (1579-1655) and his wife Lady Hyeon of the Seongju Hyeon Clan. In front of the tomb is the tomb of Jo Ik’s parents, Jo Yeong-jung (1558-1646) and Lady Yun of the Haepyeong Yun Clan.

Jo Ik, an expert in neo-Confucianism, was well versed in the study of rites and calligraphy. He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602 and held various official posts. In 1618, when King Gwanghaegun (r. 1608-1623) took away the royal title of his stepmother Queen Dowager Inmok (1584-1632) and confined her in the West Palace (today’s Deoksugung Palace), Jo Ik decided to leave his official post and move to Sinchang (today’s Asan area), where he built a thatched-roof house and devoted himself to his studies. In 1623, when King Injo (r. 1623-1649) took the throne, Jo Ik returned to office, eventually becoming second state councilor. Upon his death, Jo Ik was first buried near Donghwasan Mountain in Yesan, but his tomb was later moved to Dogosan Mountain in Sinchang in 1660 and then to its current location in 1690.

The base of the circular burial mound is surrounded by stone plates. These stones are inscribed with the characters sinhyang (辛向), which indicates that the tomb faces northwest. In front of the burial mound, there are several stone structures including a table, an incense table, a tombstone, two stone statues of civil officials, and two pillars.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조선시대의 문신이자 학자인 조익(1579-1655)과 부인 성주현씨의 합장묘이다. 묘 앞에는 조익의 부모인 조영중(1558-1646)과 해평윤씨의 합장묘가 있다.

조익은 성리학의 대가로서 예학과 서화에 뛰어났다. 1602년 과거에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다. 1618년 광해군(재위 1608-1623)이 계모인 인목대비(1584-1632)를 폐위하여 서궁(지금의 덕수궁)에 가두자, 조익은 벼슬에서 물러나 신창(지금의 아산 지역)으로 이주하였고, 초가를 짓고 학문 연구에 몰두하였다. 1623년 인조(재위 1623-1649)가 왕위에 오르자 다시 관직에 나아가 벼슬이 좌의정까지 올랐다. 사망 직후 예산 동화산 일대에 묻혔다가 1660년 신창 도고산 일대로 이장하였고, 1690년 지금의 위치로 다시 옮겼다.

둥근 봉분 아랫부분에는 둘레돌을 둘렀다. 돌에는 ‘신향(辛向)’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묘소가 서북쪽을 향하고 있다는 뜻이다. 봉분 앞에는 상석, 향로석, 묘비, 문인석, 석주 등이 배치되어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