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칠탄서원
밀양 칠탄서원 Chiltanseowon Confucian Academy, Mirya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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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밀양 칠탄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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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Chiltanseowon Confucian Academy, Miryang |
한자 | 密陽 七灘書院 |
주소 |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미촌리 산 81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72호 |
지정(등록)일 | 1983년 7월 20일 |
분류 |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원 |
수량/면적 | 4동 |
웹사이트 | 밀양 칠탄서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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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임진왜란 때 밀양에서 의병을 일으킨 오한 손기양(聱漢 孫起陽)을 기리는 서원이다. 성균관 전적*, 울주 판관 등을 지낸 그는 광해군(1608∼1623 재위) 때 창원 부사로 있던 중 정치가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했다. 단장천이 내려다보이는 이곳에 별장을 짓고 은둔 생활을 하면서 후진을 양성했다. 그의 호인 오한은 ‘못 들은 척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칠탄’은 중국 후한 시대 엄광이 함께 공부했던 황제의 부름에 응하지 않고 칠리탄(七里灘)에서 낚시하며 은둔한 데서 따왔다.
영조 때인 1725년 후손들이 건물을 세워 진암서당(眞巖書堂)이라 불렀으며, 1844년에는 손기양의 위패를 모시는 청절사(淸節祠)를 짓고 칠탄서원으로 고쳐 불렀다. 고종(1863∼1907 재위) 때 서원 철폐령에 따라 헐렸다가 1914년 다시 지었다.
건물은 ‘ㅁ’ 자형으로 배치돼 있다. 강당인 읍청당(挹淸堂) 좌우에는 기숙사인 동재(東齋)와 서재(西齋)가 누각 형식으로 자리하고, 앞에는 정문인 칠탄정(七灘亭)이 있다. 청절사가 있던 자리에는 유허비가 세워졌다.
- 전적(典籍): 조선 시대에 성균관의 학생을 지도하는 일을 맡아보던 정육품 벼슬
영문
Chiltanseowon Confucian Academy, Miryang
A Confucian academy, called seowon in Korean, is a private education institution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that usually combined the functions of a Confucian shrine and a lecture hall.
Chiltanseowon Confucian Academy is dedicated to Son Gi-yang (1599-1617), a scholar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With the outbreak of Japanese invasions in 1592, Son Gi-yang mobilized a civilian army in his hometown, Miryang, to fight off the invaders. During the reign of King Gwanghaegun (r. 1608-1623), due to a turbulent political situation, Son resigned from his post and returned to his hometown. He built a house overlooking the Danjangcheon Stream, lived in seclusion, and dedicated himself to teaching his students. Chiltan in the name of this Confucian academy refers to Chillitan Pond* in which Yan Guang (BCE 37-43 CE)*, a famous Chinese sage of the Later Han period (25–220 AD), fished. According to an ancient tale, Yan Guang ignored a call to the court from the Emperor Guangwu of Han with whom he studied in the past, and instead chose a hermit life and found joy in fishing. Son’s similar attitude is best expressed in his pen name, O Han, which means “one who pretends not to hear.”*
In 1725, Son’s descendants built a village study hall on the spot where his house once stood. In 1844, Cheongjeolsa Shrine enshrining Son’s spirit tablet was built and the complex became a Confucian academy. It was demolished in the late 19th century when most shrines and Confucian academies were shut down by a nationwide decree. In 1914, the lecture hall and other buildings were rebuilt.
Currently the complex includes a main gate, a lecture hall, and two dormitories, which together form a square layout. A stele marks the spot where Cheongjeolsa Shrine once stood.
- Pond? Stream?...
- The dates relating to 엄광 (嚴光 right?) differ from source to source - Chinese wiki gives no dates, English one (https://en.wikipedia.org/wiki/Yan_Guang) suggests he lived later - in 국문 there are no dates at all
- It may be interesting to add info about his pen name, 오한 “못 들은 척하는 사람,” “one who pretends not to hear”, because it’s connected to the name of the academy
영문 해설 내용
서원은 조선시대에 설립된 사설교육기관으로, 선현 제향과 교육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칠탄서원은 조선시대의 학자 손기양(1599-1617)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손기양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향인 밀양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광해군(재위 1608-1623) 때 정치가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단장천이 내려다보이는 이곳에 별장을 짓고 은둔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서원의 이름인 ‘칠탄’은 중국 후한 시대 엄광(B.C. 37~43)이 함께 공부했던 황제의 부름에 응하지 않고 ‘칠리탄’에서 낚시하며 은둔했다는 고사에서 따온 것이다.
손기양의 별장이 있던 자리에 1725년 후손들이 서당을 세웠고, 1844년 손기양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청절사를 세우면서 서원이 되었다. 19세기 말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헐렸다가, 1914년에 강당과 다른 건물들을 다시 지었다.
현재 서원은 정문, 강당,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청절사가 있던 자리에는 현재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참고자료
- 늦은 봄날 칠탄서원 가는 길..., 2021.05.28. Pleasure from Emptiness, 개인 블로그 http://egloos.zum.com/hanulh/v/5384693 -> 사진 상세. / 칠탄정의 외벽은 나무판자로 만들어진 문으로 마감하였다.
-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735418 『오한집』 간행과 칠탄서원 건립의 역사적 의미]」, 이남옥, 『한국사학사학보』 43, 2021 ->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헐렸다가 1914년에 유허비를 세운 후 1936년에 다시 지었다.
- 밀양 칠탄서원,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밀양_칠탄서원 -> 영조 19년(1743)에 진암서당으로 세웠는데, 헌종 10년(1844) 선생의 위패를 모시는 청절사를 세워 칠탄서원으로 부르게 되었다. 경내에는 청절사, 강당, 동재와 서재, 문루, 내삼문, 주사 등이 있다. 청절사에는 손기양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해마다 3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낸다. (청절사 자리에 유허비각 있으므로 오류로 보임-확인필요)동재는 중강재라 하여 숙소로 쓰였고, 서재는 벽립재라 하여 학생들이 공부하던 곳이다.
- 칠탄서원, 서원연합회 http://seowonstay.com/bbs/board.php?bo_table=slist&wr_id=894&page=12 -> 1844년(헌종 10) 고을 사림(士林)들의 주장으로 오한(聱漢)이 만년을 보내던 별업(別嶪) 경내에다 청절사(淸節祠)를 세웠다가 그 후 칠탄서원으로 편액(扁額)하였는데 이때 봉안문(奉安文)과 상향축문(常享祝文)은 정재 유치명(定齋 柳致明)이 지었다.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毁撤)되고 후손들에 의하여 서원을 정(亭)으로 편액하였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