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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서고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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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서고정사
밀양 서고정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밀양 서고정사
한자 密陽 西皐精舍
주소 경상남도 밀양시 퇴로1길 43 (부북면)
지정(등록) 종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77호
지정(등록)일 2009년 10월 22일
분류 유적건조물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2동
웹사이트 밀양 서고정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근대 신교육 기관 화산의숙을 설립한 항재 이익구(恒齋 李翊九)가 1898년 지은 별장이다. 서고는 ‘서쪽에 있는 작은 언덕’이라는 뜻이고, 정사는 학문을 가르치기 위하여 마련한 집을 일컫는다. 이익구가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지은 퇴로리 이씨 고가에서 300m쯤 떨어진 곳에 있다.

이익구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자 두문불출하면서 교육과 독서, 저술로 망국의 한을 달랬다. 중국 역사를 분석한 『독사차기*』를 저술하고 『항재집』을 남겼다.

이익구가 세상을 뜬 뒤에는 아들과 손자들이 이곳에서 뜻을 이었다. 큰아들 이병희(李炳熹)는 1917년 실학자 이익의 문집인 『성호집』을 국내 최초로 출간하였으며, 『조선사강목』을 집필하고 문집으로 『성헌집』을 남겼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쓴 ‘서고정사기(西皐精舍記)’가 벽에 걸려 있다. 이병희의 회갑을 송축하여 1919년 영남 인사들이 서고정사에서 만든 모임인 관선계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면 4칸의 팔작지붕*으로 된 몸채와 별채인 한서암(寒棲庵), 관리사와 문사(門舍), 연못 등으로 이뤄져 있다.


  • 팔작지붕: 위 절반은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고 아래 절반은 네모꼴로 된 지붕
  • 독사차기(讀史箚記): 중국 전국 시대에서 당말 오대에 이르는 1300년 역사를 분석한 책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근대 교육 기관인 화산의숙을 설립한 이익구(1838-1912)가 1898년에 지은 개인 별장이다. ‘서고’는 퇴로리 마을 서쪽에 있는 작은 언덕에 지어진 집이라는 뜻이다.

이익구는 1890년 퇴로리로 이주한 후 근대 교육에 앞장섰으며, 1910년 일제에 의해 국권을 빼앗긴 이후에는 이곳에서 두문불출하면서 독서와 저술에만 몰두하였다.

집은 정당(正堂)과 별채, 고직사 및 문간채로 이루어져 있다. 누마루처럼 꾸민 별채 주위에 정원 인공섬이 있는 'ㄴ'자 모양의 연못이 조성되어 있으며, 내담을 쌓아 내부 영역과 관리사 영역을 구분하였다.

이익구의 큰아들 이병희는 이곳에서 1917년 자신들의 선조이자 조선시대의 실학자인 이익(1681-1763, 호 성호)의 문집을 간행하였다. 또한 서고정사에서는 1919년에 이병희의 회갑을 기념하며 모인 지역 인사들이 결성한 모임인 ‘관선계’가 지금까지도 매년 열리고 있다.


  • 이곳은 이익구의 살림집(밀양 퇴로리 이씨고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12호)에서 300m 가량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