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익희 생가(개별)
신익희 생가(개별) 申翼熙 生家 Birthplace of Sin Ik-hu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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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안내판: 신익희 생가 |
해설문
국문
- 만앙정 萬仰亭
만앙은 ‘만인을 믿고 따르며 우러른다(존경한다)’라는 뜻이다. 이 현판은 독립운동가이며 성균관대학교 설립자 겸 초대 총장이신 심산 김창숙 선생이 신익희 선생을 기리며 쓴 것이다.
- 광동강숙 廣東講塾
신익희 선생이 일본에서 유학할 때 여름방학을 맞아 귀국하여 두 형 신규희, 신필희과 함께 1913년에 개설한 사설 강습소이다. 일제강점기 후 동명 강습소라 불렸으며 이웃 마을에서 80명 가까운 학생들이 모였다고 한다.
- 안채
안채는 대청마루(4번)를 중심으로 우측에 신위를 모셔놓은 사당(1번), 안방(2번), 부엌(3번)이 있고 좌측으로는 신익희 선생이 태어난 건넛방(5번)으로 구성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티(T)자 형태를 이루고 있다.
- 신위를 모셔놓은 사당
- 안방
- 부엌
- 대청마루
- 건넛방(해공 신익희 선생 산실)
- 일각문 一脚門
일각문은 뒤뜰로 통하는 문으로, 신익희 선생 및 일가의 어록과 유훈 그리고 선생을 기리는 많은 분들의 기념비가 있다.
영문
Birthplace of Sin Ik-hui
- Manangjeong Pavilion
Manangjeong Hall is the men's quarters of this house and the name Manangjeong means "believe, follow and revere everyone (?)". The wooden plaque hung at the front was written by Kim Chang-suk, an independence activist and founder of Sungkyunkwan University, to commemorate Sin Ik-hui.
- Gwangdonggangsuk Learning Center (Village School?)
Here is where Sin Ik-hui who came back upon summer vacation during his study in Japan in 1913, opened a learning center called Gwangdonggangsuk together with his two older brothers, Sin Gyu-hui and Sin Pil-hui. It is said to have gathered approximately 80 students from neighboring villages and after this, it was called Dongmyeonggangseupso Learning Center (?).
- Women's Quarters
When seen from above, the building of the women's quarters is T-shaped. It has a wooden-floored hall (No.4) in the center, a shrine (No.1), a main underfloor-heated room (No.2), and a kitchen (No.3) to the right, and a secondary underfloor-heated room (No.5) where Sin Ik-hui was born to the left.
- 항목Shrine enshrining spirit tablets
- 항목 Main underfloor-heated room
- Kitchen
- Wooden-floored hall
- Secondary underfloor-heated room
- Corner Gate (?)
This gate is a gate leading to the backyard. In the backyard are steles inscribed with conversations and the dying injunctions of Sin Ik-hui and his family as well as a stele commemorating Sin Ik-hui.
영문 해설 내용
- 만앙정
만앙정은 이 집의 사랑방으로, 만앙정이라는 이름은 ‘만인을 믿고 따르며 존경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정면에 걸린 현판은 독립운동가이며 성균관대학교 설립자인 김창숙이 신익희를 기리며 쓴 것이다.
- 광동강숙
이곳은 1913년 신익희가 일본 유학 중 여름방학을 맞아 귀국하였을 때, 두 형 신규희, 신필희와 함께 광동강숙이라는 강습소를 열었던 곳이다. 이웃 마을에서까지 80명 가까운 학생들이 모였다고 하며, 이후에는 동명강습소라 불렸다.
- 안채
안채는 위에서 봤을 때 T자형을 이룬 건물이다. 대청(4번)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사당(1번), 안방(2번), 부엌(3번)이 있고, 왼쪽에는 신익희가 태어난 건넛방(5번)이 있다.
- 신위를 모셔놓은 사당
- 안방
- 부엌
- 대청마루
- 건넛방(신익희 산실)
- 일각문
이 문은 뒤뜰로 통하는 문이다. 뒤뜰에는 신익희와 일가의 어록과 유훈을 새긴 비석들과 신익희를 기리는 기념비들이 있다.
갤러리
참고자료
- 신익희 생가, 경기도문화재 : 육구삼+ Series, 경기문화재단. https://ggc.ggcf.kr/p/5bec335923fff46696498b8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