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황선생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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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황선생 신도비
Stele of Jeong Hwang
대표명칭 정황선생 신도비
영문명칭 Stele of Jeong Hwang
한자 丁熿先生 神道碑
주소 전라북도 장수군 산서면 봉서리 산12번지
지정(등록) 종목 시도유형문화재 제202호
지정(등록)일 2004년 7월 30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해설문

국문

신도비란, 임금이나 고관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무덤가에 세워두는 비이다. 이 비는 조선중기 문신인 정황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 정황은 1512년에 산서 하월리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조선 중종 31년(1536)에 문원부정자라는 관직에 올랐고, 사간원정언, 사헌부지평, 병조형조정랑 춘추관기주관의 벼슬을 지냈다. 1547년 정미사화로 재현들이 찬축 되었는데, 선생도 곤양으로 귀양 가게 되었다. 명년에 거제로 옮겼다가 1560년에 타계하였다.

영문

This is the stele of Jeong Hwang (1512-1560), a civil official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Born in Sanseo-myeon of Jangsu, Jeong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536 and served in several government positions. However, during the Literati Purge of 1547, he was engaged in severe political strife and was sent into exile to Gonyang, today’s Sacheon, Gyeongsangnam-do. In the following year, he was forced to move to Geoje and died in 1560.

In 1708, he was reinstated and posthumously promoted to minister of personnel and was enshrined in Yeongcheonseowon Confucian Academy in Imsil.

영문 해설 내용

이 비는 조선시대 문신인 정황(1512~1560)을 기리는 신도비이다.

장수군 산서면에서 태어난 정황은 1536년 과거에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1547년 사화가 일어나자, 정쟁에 휘말려 곤양(오늘날의 경상남도 사천) 지역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이듬해 거제로 옮겨졌고, 1560년 세상을 떠났다.

1708년 신원되어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임실에 있는 영천서원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