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사충단
김해 사충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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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김해 사충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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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海 四忠壇 |
주소 | 경상남도 김해시 가야로405번안길 22-9 (동상동)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남도 기념물 제99호 |
지정(등록)일 | 1990년 12월 20일 |
분류 | 유적건조물/종교신앙/제사유적/제사터 |
수량/면적 | 1기(9,837) |
웹사이트 | 김해 사충단,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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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김해 사충단은 임진왜란의 최초 의병으로 받들어지는 충신 송빈(宋賓), 이대형(李大亨), 김득기(金得器), 류식(柳湜)을 기리는 제단이다. 송빈은 진영읍, 이대형은 삼방동, 김득기는 외동, 류식은 대동면 출신으로 전하고 있다.
조선 선조 25년(1592) 음력 4월 19일 왜군이 김해성을 포위했다. 김해 부사를 비롯한 지휘관들이 밤을 틈타 도망쳤으나 네 명의 충신은 각자 성안의 의병들을 지휘하며 성문을 맡아 왜군과 싸웠다. 다음날 김해성은 왜군에 함락되었고 네 명의 충신은 모두 전사하였다.
숙종 34년(1708)에 송빈을 기리는 표충사가 처음 주촌면에 세워졌다. 이후 정조 8년(1784)에 진례면에 사당을 다시 세우면서, 이대형, 김득기를 더해 세 명의 충신을 기리고 사당 이름을 송담사라고 하였다. 순조 33년(1833)에 송담사를 표충사로 새로이 이름 지어 편액을 내렸고 고종 8년(1871)에 왕명으로 류식을 더해 동상 시장 부근에 사충단을 새롭게 세웠다. 이후 몇 번의 이전을 거쳐 현재 위치에 자리하게 되었다. 사충단 비석에는 사충신이 죽은 후에 내려진 벼슬 이름을 새겼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김해 사충단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다 전사한 네 명의 충신 송빈(1542-1592), 이대형(1543-1592), 김득기(1549-1592), 류식(1552-1592)을 기리기 위한 제단으로, 1871년에 조성되었다.
네 사람은 1592년 왜군이 김해성을 포위하자 도망간 지휘관들을 대신해 의병들을 이끌고 싸웠지만, 다음날 김해성이 함락되면서 모두 죽었다. 이들의 활동은 임진왜란 때 활동한 의병들의 시작이 되었다고 한다.
사충단이 처음 조성되었던 곳은 현재 동상 시장 부근으로,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의 왕릉(사적 제 73호) 앞쪽이었다고 한다. 1977년 김해시의 도시계획으로 인해 다른 곳으로 이전되었다가 1995년 지금의 자리에 송담서원과 함께 복원되었다. 이곳에서는 매년 음력 4월 20일에 네 사람의 제사를 지낸다.
경내의 건물은 앞쪽부터 정문, 동재와 서재, 강당, 내삼문, 사당 순으로 자리하고 있고, 사당 왼편에 별도의 문을 두고 ‘사충단’이라는 현판이 걸린 비각을 배치했다. 비각을 제외한 모든 건물들은 복원 당시 새로 지은 것이다. 비각 안에는 네 사람에게 추증된 관직명을 새긴 비석 1기가 있다.
송담서원은 1708년 송빈을 기리기 위해 주촌면에 세워진 표충사에서 시작되었다. 표충사는 1784년 이대형과 김득기를 추가로 배향하면서 송담사로 바뀌었고,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서원이 되었다. 1833년 표충사라는 이름으로 사액을 받았으나 1868년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훼철되었고, 1871년 표충사를 복원하면서 류식을 추가로 배향하게 되었다.
- 첫 소재지로 언급되는 주소들이 동상 시장과 수로왕릉 사이에 위치함.
- 비각의 지붕 모서리 아래에 여의주를 입에 문 용 4마리가 있다.
- 1871년에 당시 김해부사였던 정현석이 왕명을 받고 표충사를 복원하였다고 한다.
갤러리
참고자료
- 김해성 함락 위기 맞서 순절한 네 의병장 충절 기리다 경남매일, 2021.9.7. http://www.gn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479397 -> 사충단은 처음에 김해시 동상동 881-11번지(김수로왕의 왕비 궁터였던 연화사 포교당 앞)에 있었던 것을 동상동 227-6, 8번지로 강제 이전됐다가 구획정리에 의한 택지개발로 현재 위치인 동상동 161번지 분성산 중턱으로 이전되었고 특정일을 제외하고는 24시간 문이 꽁꽁 잠겨 있다.
- 김해시 공식 블로그,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gimhae4you/222319041494 -> 사충단의 원래 위치는 동상동 873번지였으나 1977년 김해시의 도시계획으로 동상동 277-6번지로 이전하였다가 1995년 4월 20일 사충신의 제향일을 기해 현재의 동상동 분산 중턱에 송담서원을 준공하고 그 안에 복원하였다. / 송담서원은 김득기, 이대형, 송빈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1716년 진례면 신안리에 창건한 송담사가 그 효시로, 여러번 훼손과 중수를 거듭하다가 1842년에 재건하면서 송담서원이 되었다(년도 차이가 많이 나므로 확인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