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중명전
덕수궁 중명전 德壽宮 重眀殿 Jungmyeongjeon Hall of Deoksugung Pala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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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안내판: 덕수궁 |
해설문
국문
중명전의 본래 이름은 수옥헌(漱玉軒)으로 황실 도서관으로 지어진 전각이었다. 처음에는 1층의 서양식 건물이었으나, 1901년 화재이후 지금과 같은 2층 건물로 재건되었다. 1904년에 덕수궁 내에 큰 화재가 발생하자 고종은 중명전을 임시 거처로 사용하였으며 1907년 강제퇴위 될 때까지 머물렀다. 중명전 외에도 환벽정, 만희당을 비롯한 10여 채의 전각들이 있었으나, 1920년대 이후 중명전 이외의 건물은 없어졌다.
중명전은 1905년 일본의 강압 속에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는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된 비운의 장소이기도 하다.
영문
Jungmyeongjeon Hall of Deoksugung Palace
Jungmyeongjeon, meaning“Hall of Everlasting Brightness,” was the royal library of Deoksugung Palace. It was first built in 1899 as a one-story Western-style building but burnt down in 1901. The current two-story red brick building, designed by the Russian architect Afanasy Seredin-Sabatin (1860-1921), was built shortly thereafter.
Following a great fire at Deoksugung Palace in 1904, Emperor Gwangmu (i.e. King Gojong, r. 1864-1907) used this building as his temporary office and residence. In 1905, the Imperial Japanese Army entered Jungmyeongjeon Hall and pressured the emperor to sign a treaty that would deprive Korea of its diplomatic sovereignty and make Korea a protectorate of Imperial Japan. The emperor refused, but five traitorous cabinet members signed the treaty against his wishes.
Emperor Gwangmu resided at Jungmyeongjeon Hall until 1907 when he was forced to abdicate by the Japanese. Korea was formally annexed by Imperial Japan in 1910.
- King Gojong (r. 1864-1907) / Emperor Gwangmu
- 생략? : There were originally about ten auxiliary buildings within the premises of Jungmyeongjeon Hall, but they were demolished beginning in the 1920s.
영문 해설 내용
이 건물은 1899년 무렵 수옥헌(“옥을 닦는 전각”)이라는 이름의 황실 도서관으로 지어졌다. 원래 1층의 서양식 건물이었으나, 1901년 화재 이후 지금과 같은 2층 건물로 재건되었다. 언제 재건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중명전( “광명이 계속 이어져 그치지 않는 전각”)이라는 이름은 1906년 무렵부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명전 권역에는 10여 채의 전각들이 있었으나, 1920년대 이후 중명전 이외의 건물은 없어졌다.
1904년 덕수궁에 큰 화재가 발생하자, 고종 황제는 이곳을 임시 거처로 사용하였으며, 1907년 강제 퇴위될 때까지 머물렀다. 1905년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일본제국의 보호국으로 만든 을사늑약이 이곳에서 강제로 체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