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암사당
농암사당 |
|
대표명칭 | 농암사당 |
---|---|
한자 | 聾巖祠堂 |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 612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1호 |
지정(등록)일 | 1973년 8월 31일 |
분류 |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농암사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
해설문
국문
농암사당은 조선시대의 학자이자 문신인 농암 이현보(聾巖 李賢輔, 1467~1555)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곳이다.
안동에서 태어난 이현보는 연산군 4년(1498)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지냈다. 노년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 등과 교유하며 자연을 노래하는 문학 작품을 많이 남겼다.
농암사당은 순조 27년(1827)에 처음 세워졌다. 원래는 도산면 분천리에 있었으나 안동댐 건설로 1975년 도산면 운곡리로 옮겼고, 2005년에 지금의 위치에 농암유적지를 조성하면서 다시 옮겨 지었다. 현재 이곳에는 이현보를 기리는 분강서원이 있는데, 농암사당은 서원 경내 가장 안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덕을 숭상하는 사당’이라는 뜻의 ‘숭덕사’라는 현판을 걸고 있다.
영문
Shrine of Yi Hyeon-bo
This shrine was established in 1827 to venerate the scholar and civil official Yi Hyeon-bo (1467-1555, pen name: Nongam). Both his spirit tablet and portrait are kept in the shrine.
Yi Hyeon-bo was born in Andong. He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498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In his old age, he retire to his hometown where he kept company with his acquaintances, including the renowned scholar Yi Hwang (1501-1570), and wrote many literary works praising nature.
The shrine was originally located in Buncheon-ri Village, but was moved to Ungok-ri Village in 1975 due to the construction of the Andong Dam. It was moved in 2005 to its current location at the Historic Site Related to Yi Hyeon-bo. When it was moved to the current location, it was made a part of Bungangseowon Confucian Academy. It is located at the far back of the academy and has a name plaque that reads Sungdeoksa, meaning “Shrine of Venerating Virtue.”
영문 해설 내용
농암사당은 조선시대의 학자이자 문신인 이현보(1467-1555, 호: 농암)를 기리기 위해 1827년에 지었다. 사당에는 그의 위패와 영정을 모셔져 있다.
안동에서 태어난 이현보는 1498년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지냈다. 노년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이황(1501-1570) 등과 교유하며 자연을 노래하는 문학 작품을 많이 남겼다.
농암사당은 원래 분천리에 있었으나 안동댐 건설로 1975년 운곡리로 옮겼고, 2005년에 지금의 위치에 농암유적지를 조성하면서 다시 옮겨 지었다. 현재 이곳에는 분강서원이 있는데, 농암사당은 서원 경내 가장 안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덕을 숭상하는 사당’이라는 뜻의 ‘숭덕사’라는 현판을 걸고 있다.
문맥요소
Nodes
ID | Class | Label | Description |
---|---|---|---|
이현보 | Actor | 이현보(李賢輔,_ 1467-1555) | |
농암_사당 | Place | 농암_사당 | |
숭덕사 | Place | 숭덕사 | |
분강서원 | Place | 분강서원 | |
안동댐_건설 | Event | 안동댐_건설 | |
농암_유적지_정비 | Event | 농암_유적지_정비 | |
이현보_초상 | Heritage | B00-0872-0000 | |
농암영정_후사본_및_금서대 | Heritage | H37-0063-0000 | |
이재관 | Actor | 이재관(李在寬,_1783-1837) | |
한국국학진흥원 | Place | 한국국학진흥원 |
Links
Source | Target | Relation |
---|---|---|
이현보 | 농암_사당 | isEnshrinedIn |
농암_사당 | 숭덕사 | sameAs |
분강서원 | 숭덕사 | hasPart |
농암_사당 | 안동댐_건설 | isRelatedTo |
농암_사당 | 농암_유적지_정비 | isRelatedTo |
농암영정_후사본_및_금서대 | 숭덕사 | currentLocation |
농암영정_후사본_및_금서대 | H37-0063-0000 | isDesignatedAs |
농암영정_후사본_및_금서대 | 이현보_초상 | depicts |
이현보_초상 | B00-0872-0000 | isDesignatedAs |
농암영정_후사본_및_금서대 | 이재관 | creator |
이현보_초상 | 한국국학진흥원 | currentLocation |
갤러리
참고자료
- 이현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46501 → 1498년(연산군 4) 식년문과에 급제한 뒤 32세에 벼슬길에 올라 예문관검열·춘추관기사관·예문관봉교 등을 거쳐, 1504년(연산군 10) 38세 때 사간원정언이 됐다. 이때에 서연관의 비행을 탄핵했다가 안동에 유배됐으나 중종반정으로 지평에 복직된다. 밀양부사·안동부사·충주목사를 지냈고, 1523년(중종 18)에는 성주목사로 선정을 베풀어 표리(表裏)를 하사받았다. 이후 병조참지·동부승지·부제학 등을 거쳐 대구부윤·경주부윤·경상도관찰사·형조참판·호조참판을 지냈다. 1542년(중종 37) 76세 때 지중추부사에 제수됐으나 병을 핑계로 벼슬을 그만둔다. 이황(李滉)·황준량(黃俊良) 등과 교유했으며 고향에 돌아와서는 시를 지으며 한가롭게 보냈다.
- 농암사당, 디지털안동문화대전 http://andong.grandculture.net/andong/toc/GC02400777 → 농암사당은 방형(方形)의 토석 담장으로 구획되어 있는데 대문채와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전퇴(前退)를 둔 형식이고, 지붕은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네모기둥을 사용하고 기둥 위에는 공포(栱包)를 두지 않고 납도리에 장혀만으로 구성한 장혀수장집이다. 외부의 모습은 매우 간소하게 하였으나 내부의 가구는 2중량을 둔 5량 구조이다. 가구에서 눈에 띄는 것은 종도리를 받친 대공이 별설되었다는 것인데 이는 경상북도 경주 안강에 있는 독락당(獨樂堂)의 대공과 흡사하다. 정면 3칸 모두에 궁판이 있는 정자살 두 짝 여닫이문이 달려 있으며, 측벽에도 정자살 광창을 내었는데 그 구성법과 솜씨가 예안향교 대성전이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 후조당(後彫堂) 가묘(家廟)의 경우와 매우 흡사하다. 사당 내에는 우물마루로 바닥을 시설하고 주벽에는 농암 영정을 봉안하였다.
- 이현보 초상, 디지털안동문화대전 http://andong.grandculture.net/andong/toc/GC02400709 → 농암은 조선 중종 때의 문신이자 시조 작가로 1498년(연산군 4)에 과거에 급제한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쳤으나 곧은 성품으로 직언을 함에 따라 안동으로 일시 유배되는 등 정치적으로 기복이 심한 생활을 하였다. 76세 때인 1542년(중종 37) 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으나 사임하고 고향인 예안(禮安)으로 돌아와 89세에 사망하기까지 자연을 벗하여 시를 짓고 제자를 가르치며 여생을 보냈다. 강호 시조의 대표로 꼽히는 「어부가(漁夫歌)」를 비롯하여 자연을 노래한 많은 시조를 남겨 국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현보는 1612년(광해군 4) 향현사에 제향되었다가 1700년(숙종 26) 예안의 분강서원으로 옮겨졌다. 「이현보 초상」은 1986년 10월 15일 보물 제872호로 지정되었다. / 「이현보 초상」은 이현보가 경상도관찰사로 재직하던 1536년(중종 31) 팔공산 동화사의 옥준상인(玉埈上人)이라는 승려가 그렸다고 전한다. 규격은 126×105㎝이다. / 후손들이 영정(影幀)의 마모를 염려하여 1827년(순조 27) 소당 이재관(李在寬, 1783~1837)으로 하여금 모사하게 한 별본영정(別本影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63호)과 함께 전하고 있다.
- 농암종택, 국어교사 박전현입니다, 네이버 블로그, 2018.12.5. https://blog.naver.com/9594jh/221412623203 → 분강서원은 1699년 지역 유림들에 의해 세워졌다.
- 농암종택 http://www.nongam.com/ → 배치도
- 농암영정후사본및금서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113700630000
- 농암 영정 후사본 및 금서대, 디지털안동문화대전. http://andong.grandculture.net/andong/toc/GC0240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