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해암정

HeritageWiki
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1년 10월 6일 (수) 13:29 판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이동: 둘러보기, 검색
동해 해암정
Haeamjeong Pavilion, Donghae
북평 해암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동해 해암정
영문명칭 Haeamjeong Pavilion, Donghae
한자 東海 海岩亭
주소 강원도 동해시 추암동 474-5
지정(등록) 종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3호
지정(등록)일 1979년 5월 30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북평 해암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1361년(공민왕 10) 삼척심씨의 시조인 심동로(沈東老, 1310~?)가 벼슬을 사양하고 내려와 건립한 해암정은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고려시대에 처음 지어진 해암정은 본래 건물이 불에 타서 사라진 이후 1530년(중종 25) 후손인 심언광(沈彦光, 1487~1540)에 의해 다시 지어졌다. 그리고 1794년(정조 18)에 크게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건물 내부에는 한명회가 쓴 「능파대기(凌波臺記)」를 비롯하여 옛 명사들이 남긴 글귀가 많이 남아있다.

심동로는 기암괴석과 촛대바위로 유명한 이곳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풍월을 즐기며 여생을 보냈다고 하는데, 실제로 해암정에서 보는 일출은 장관으로 유명하다.

영문

Haeamjeong Pavilion, Donghae

Haeamjeong Pavilion was first built in 1361 by Sim Dong-ro (1310-?), a civil official of the Goryeo period (918-1392) and the founder of the Samcheok Sim Clan. The name Haeamjeong means “Pavilion of the Sea Rocks,” in reference to the unusually shaped limestone rocks, located in the waters in front of the pavilion. The pavilion, with its picturesque surroundings, is a renowned sunrise-viewing site.

Sim Dong-ro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342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However, he became distraught with the chaotic political situation during the reign of King Gongmin (r. 1351-1374) and resigned from his posts. Afterward, he settled in this area and dedicated himself to teaching.

The original pavilion burnt down but was reconstructed in 1530 by Sim’s descendant Sim Eon-gwang (1487-1540). In 1794, it underwent a large-scale renovation. Inside the pavilion are several wooden plaques with calligraphy by historical figures such as the eminent civil official Han Myeong-hoe (1415-1487).

영문 해설 내용

해암정은 고려시대의 문신이자 삼척심씨 시조인 심동로(1310-?)가 벼슬에서 물러난 뒤인 1361년에 건립하였다. 해암정이라는 이름은 “바다 바위의 정자”라는 뜻으로, 정자 앞바다의 기암괴석에서 비롯된 것이다. 해암정과 주변 경관은 일출을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심동로는 1342년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지냈으나, 공민왕(재위 1351-1374) 때 정치에 회의를 느끼고 벼슬에서 물러났다. 이후 기암괴석을 비롯한 명승으로 유명한 이곳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여생을 보냈다.

원래의 건물이 불에 타 사라진 이후, 1530년 심동로의 후손인 심언광(1487-1540)이 다시 지었고 1794년 크게 중수하였다. 건물 안에는 조선시대의 문신 한명회(1415-1487) 등 명사들이 남긴 글이 적힌 현판들이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