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구암정
2021 안내문안 초안 작성 지원 사업
기존 국문
구암정은 조선 중종대의 인물인 구암 양배의 덕망을 흠모하여 그의 후손과 후학들이 1898년에 지은 것이다. 양배는 학문과 덕망이 매우 높았으나, 몇 차례의 사화로 어진 선비들이 화를 당하자 벼슬을 포기하고, 아우 양돈과 함께 이 곳 적성강 상류 만수탄에서 고기를 낚으며 세상을 등지고 살았다고 한다. 지금도 이들 형제가 즐겨 앉았다는 만수탄의 바위를 배암, 돈암 또는 형제암이라고 부른다. 그를 기리기 위해 1808년에 후손들이 적성면 지북리에 지계서원을 세웠으나, 1868년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지계서원이 헐린 후 구암정이 세워졌다.
수정 국문
초고
순창군 동계면 만수탄 위에 자리잡고 있는 정자이다. 구암정(龜巖亭)이 있는 만수탄(萬壽灘) 천변은 순창 출신의 덕망 높은 선비인 양배(楊培)가 소요(逍遙)하던 곳이다. 양배의 자는 이후(而厚), 호는 구암(龜岩)이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戊午士禍)와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甲子士禍)로 사림의 화를 보고 아우 돈(墩)과 함께 고향에서 고기를 낚으면서 은거한 곳이다. 적성강(赤城江) 상류 만수탄에 양배와 양돈 형제가 고기를 낚던 바위가 있는데 이곳을 배암(培巖) 또는 돈암(墩巖)이라 부르며, 이 둘을 합쳐서는 형제암(兄弟巖)이라고도 한다.
구암정의 정확한 창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양배가 세상을 떠난 후 사림(士林)사회에서는 지계 서원(芝溪書院)을 건립하여 배향해 왔으나, 1868년(고종 5) 서원 훼철령에 의해 서원이 훼철되자 이를 안타까워한 후손들이 양배의 덕망을 흠모하고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1901년 구암정이 원래 있던 곳에 정자를 중건(重建)하여 현재까지 보존해 오고 있다.
1차 수정
구암정은 순창 출신 학자인 구암 양배(龜岩 楊培)를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1901년에 지은 정자이다.
양배는 일찍부터 학문으로 이름이 높았으나, 연산군 때의 사화로 선비들이 화를 입는 것을 보고 동생인 양돈(楊墩)과 함께 고향에 은거하였다. 구암정이 있는 만수탄 천변은 원래 양배와 양돈이 정자를 짓고 낚시를 즐기던 곳이다.
정조 12년(1788) 적성면 지북리에 지계서원이 창건되어 양배를 비롯한 선현들을 추모하였으나 고종 5년(1868)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거되었다. 이를 안타까워한 후손들은 양배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양배가 동생과 함께 낚시를 즐기던 자리에 지금의 정자를 다시 지었다.
정자는 팔작지붕 기와집으로, 가운데에 방을 두고 방 주위로 마루를 둘렀다.
자문의견
- 분야별 자문위원 1
- 중앙에 방을 두고 방 주위에 마루를 설치한 것이 전라도 지역 정자의 특징적인 구조임을 강조해서 소개하면 좋을 듯하다.
- 분야별 자문위원 2
- 구암정은 순창 출신 학자인 구암 양배(龜岩 楊培)를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1901년에 지은 정자이다.
- 양배는 일찍부터 학문으로 이름이 높았으나, 연산군 때의 사화로 선비들이 화를 입는 것을 보고 동생인 양돈(楊墩)과 함께 고향에 은거하였다. 구암정이 있는 만수탄 천변
은에는 원래 양배와 양돈이 정자를 짓고 낚시를 즐기던곳이다.바위가 있었다. 이 바위를 일러 배암, 또는 돈암이라 부르며, 합쳐 형제암이라고도 한다. - 정조 12년(1788) 적성면 지북리에 지계서원이 창건되어 양배를 비롯한 선현들을 추모하였으나 고종 5년(1868)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거되었다. 이를 안타까워한 후손들은 양배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양배가 동생과 함께 낚시를 즐기던 자리에 지금의 정자를 다시 지었다.
정자는 팔작지붕 기와집으로, 가운데에 방을 두고 방 주위로 마루를 둘렀다.
- *구암정이므로 바위에 대한 설명이 필요함.
-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 구암 양배의 생몰연대를 기입할 필요가 있음. 정확하지 않다면 ‘**세기 인물’ 이라는 정도로 라도 시대를 표기하는 것이 친절해 보임.
2차 수정
구암정은 15~16세기의 순창 출신 학자인 구암 양배(龜岩 楊培)를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1901년에 지은 정자이다.
양배는 일찍부터 학문으로 이름이 높았으나, 연산군 때의 사화로 선비들이 화를 입는 것을 보고 동생인 양돈(楊墩)과 함께 고향에 은거하였다. 구암정이 있는 만수탄 천변에는 원래 양배와 양돈이 정자를 짓고 낚시를 즐기던 바위가 있었다. 이 바위를 일러 배암 또는 돈암이라 부르며, 합쳐 형제암이라고도 한다.
정조 12년(1788) 적성면 지북리에 지계서원이 창건되어 양배를 비롯한 선현들을 추모하였으나 고종 5년(1868)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거되었다. 이를 안타까워한 후손들은 양배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양배가 동생과 함께 낚시를 즐기던 자리에 지금의 정자를 다시 지었다.
정자는 팔작지붕 기와집으로, 가운데에 방을 두고 방 주위로 마루를 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