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우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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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 우경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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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경산 우경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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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山 寓敬齋 |
지정(등록) 종목 | 경산시 향토문화유산(향토기념물) 제2호 |
해설문
국문
경산 우경재는 근대말 유학자 정기연(1877~1952)이 나라를 잃은 후 은거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글을 쓰며 항일운동을 하던 곳이다.
정기연은 1896년부터 우암 송시열의 후손인 송병선과 송병순 형제에게 유학을 배우며 기호학파의 이름난 유학자로 성장하였다. 을사조약과 한일합병조약으로 두 스승이 자결한 후 나라와 두 스승을 모두 잃은 정기연은 우경재에 은거하면서 후손들을 가르치며 집안에서는 일본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한글을 쓰도록 장려하였다. 또한 『탁와집(琢窩集)』을 저술하여 국한문 혼용에 앞장서고 전통예학을 다시 정리하였고, 제사상 차리는 방법을 쉽게 익히도록 한글 놀이기구인 ‘습례국(習禮局)'을 만들어 유학전통의 계승과 수호하는 데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탁와집』과 탁와 선생에 관한 자료는 영남대학교 도서관의 ‘탁와문고’에서 연구·보관되고 있으며, ‘습례국’은 국립한글박물관에 생활사 자료로 보관되어 있다.
우경재는 정면 4칸, 측면 1칸반의 ‘ㄱ’자형 팔작지붕 건물로 1914년 가을에 완공되었다. 우경재는 모든 일을 경건한 마음으로 하라는 뜻으로, 건물과 관련된 기록으로는 송철헌이 1923년에 남긴 『우경재기(寓敬齋記)』가 있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소박한 구성이나, 건물 앞면에 누를 두고 옆면에 난간이 있는 쪽마루를 두어 격식을 높이고자 하였다. 재실 건물에서 전면에 누마루를 두는 양식은 경산 지역에서는 흔하지 않은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