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태사묘
안동 태사묘 Taesamyo Shrine, And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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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안동 태사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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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Taesamyo Shrine, Andong |
한자 | 安東 太師廟 |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태사길 13, ,24-1 (북문동)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기념물 제15호 |
지정(등록)일 | 1974년 12월 10일 |
분류 |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
수량/면적 | 4,035㎡ |
웹사이트 | 안동 태사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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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태사묘는 고려 건국에 공을 세운 김선평(金宣平, 901~?), 권행(權幸), 장정필(張貞弼, 888~?)의 위패를 모시고, 이들을 위한 제사를 올리는 곳이다.
세 사람은 930년 고려 태조 왕건(王建, 918~943 재위)과 후백제의 견훤(甄萱, 867~936)이 고창(안동의 옛 지명) 지역에서 전투를 벌였을 때 고려가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도왔고, 이 전투에서 승리한 고려는 936년 마침내 후삼국을 통일하였다. 왕건은 세 사람을 공신으로 추대하고 태사(太師)의 벼슬을 하사했으며, 이 지역에 ‘동쪽을 평안하게 하다’라는 뜻의 ‘안동’이라는 새 이름을 내렸다.
태사묘는 고려 성종 2년(983) 삼태사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세운 ‘삼공신묘(三功臣廟)’에서 비롯되었다. 조선 중종 37년(1542) 현재 위치로 옮겨 지어졌으며,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광해군 5년(1613)에 규모를 확대해 재건하면서 ‘태사묘’로 이름을 바꾸었다.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1958년에 복원하였으며, 이후에도 여러 차례 보수되었다. 매년 음력 2월과 8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경내 가장 안쪽에 위패를 모신 태사묘가 있고, 태사묘 주변에는 낮은 담이 둘러져 있다. 태사묘 앞에는 회의장으로 쓰이는 숭보당, 제사 참석자들이 머무는 동‧서재, 회의나 제향이 있을 때 북을 치는 경모루 등 여러 부속건물이 있다.
영문
Taesamyo Shrine, Andong
Taesamyo Shrine was established for the veneration Kim Seon-pyeong (901-?), Gwon Haeng, and Jang Jeong-pil (888-?), who all contributed to the foundation of the Goryeo dynasty (918-1392).
These three men assisted Goryeo’s founding king, King Taejo (r. 918-943), in securing a victory at the battle of Gochang (today’s Andong) in 930. In 936, the Later Three Kingdoms were successfully united under Goryeo rule. King Taejo honored the three men as meritorious subjects and bestowed them with the office of grand preceptor (taesa), the highest government post. The king also bestowed the area with the new name Andong, meaning “Pacifying the East.”
A shrine honoring the three men was first established in 983 under the name Samgongsinmyo, meaning “Shrine of the Three Meritorious Subjects.” It was moved to its current location in 1542, but burned down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The shrine was rebuilt on a larger scale in 1613, at which time it was given the name Taesamyo, meaning “Shrine of the Grand Preceptors.” This building was destroyed during the Korean War (1950-1953) and was rebuilt in 1958. It has since undergone several repairs. A veneration ritual is held each year in the 2nd and 8th lunar months.
The shrine where the spirit tablets of the three men are held is located in the back of the complex and is surrounded by its own enclosure wall. In front of this are are several auxiliary buildings, such as a meeting hall named Sungbodang, two dormitories used by those participating in the rituals, and a pavilion named Gyeongmoru that holds a drum that is struck during meetings or rituals.
영문 해설 내용
태사묘는 고려 건국에 공을 세운 김선평(901-?), 권행, 장정필(888-?)의 위패를 모시고, 이들을 위한 제사를 올리는 곳이다.
세 사람은 930년 고려 태조(재위 918~943)와 후백제의 견훤(867-936)이 고창(안동의 옛 지명) 지역에서 전투를 벌였을 때 고려가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도왔다. 이 전투에서 승리한 고려는 936년 마침내 후삼국을 통일하였다. 태조는 세 사람을 공신으로 추대하고 ‘태사’라는 최고위 관직을 내렸다. 그리고 고창 지역에 ‘동쪽을 평안하게 하다’라는 뜻의 ‘안동’이라는 새 이름을 내렸다.
태사묘는 983년 세 사람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세운 ‘삼공신묘(三功臣廟)’에서 비롯되었다. 1542년 현재 위치로 옮겨 지어졌으며,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1613년에 규모를 확대해 재건하면서 ‘태사묘’로 이름을 바꾸었다.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1958년에 복원하였으며, 이후에도 여러 차례 보수되었다. 매년 음력 2월과 8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경내 가장 안쪽에 위패를 모신 태사묘가 있고, 태사묘 주변에는 낮은 담이 둘러져 있다. 태사묘 앞에는 회의장으로 쓰이는 숭보당, 제사 참석자들이 머무는 동‧서재, 회의나 제향이 있을 때 북을 치는 경모루 등 여러 부속건물이 있다.
문맥요소
Nodes
ID | Class | Label | Descrip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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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_태사묘 | Place | 안동_태사묘 | |
삼공신묘 | Place | 삼공신묘 | |
한국전쟁 | Event | 한국전쟁(1950) | |
안동_태사묘_안묘당 | Place | 안동_태사묘_안묘당 | |
김선평 | Actor | 김선평(金宣平) | |
권행 | Actor | 권행(權幸) | |
장정필 | Actor | 장정필(張貞弼) | |
고려_태조_왕건 | Actor | 고려_태조_왕건(高麗_太祖_王建,_877-943) | |
견훤 | Actor | 견훤(甄萱,_867-936) | |
병산_전투 | Event | 병산_전투(930) | |
고창 | Place | 고창 | 안동의 옛 지명이다. |
안동 | Place | 안동 | 왕건에게 하사받은 지명이다. |
안중_할머니 | Actor | 안중_할머니 | 병산전투 관련 설화에 등장. 안묘당에 모셔져 있음 |
안금이 | Actor | 안금이(安金伊) | 묘지기. 안묘당에 모셔져 있음. |
임진왜란 | Event | 임진왜란(1592) | |
안동_태사묘_보물각 | Place | 안동_태사묘_보물각 | |
안동_차전놀이 | Event | 안동_차전놀이 | 병산전투 승전 기념 |
안동_태사묘_차전각 | Place | 안동_태사묘_차전각 | 차전놀이 용구 보관 |
안동_태사묘_삼공신_유물_일괄 | Heritage | B00-0451-0000 | 보물 제451호로 지정되어 있음. |
삼한벽상삼중대광아보공신 | Concept | 삼한벽상삼중대광아보공신(三韓壁上三重大匡亞父功臣) | 세 사람에게 제수됨. |
Links
Source | Target | Rela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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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평 | 안동_태사묘 | isEnshrinedIn |
권행 | 안동_태사묘 | isEnshrinedIn |
장정필 | 안동_태사묘 | isEnshrinedIn |
김선평 | 병산_전투 | participatesIn |
권행 | 병산_전투 | participatesIn |
장정필 | 병산_전투 | participatesIn |
삼한벽상삼중대광아보공신 | 김선평 | hasAppointee |
삼한벽상삼중대광아보공신 | 권행 | hasAppointee |
삼한벽상삼중대광아보공신 | 장정필 | hasAppointe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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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_태조_왕건 | 권행 | hasSubjec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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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금이 | 안동_태사묘_안묘당 | isEnshrinedIn |
안중_할머니 | 병산_전투 | isRelated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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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_전투 | 안동_차전놀이 | isRelated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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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_전투 | 고창 | happenedA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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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_태사묘_삼공신_유물_일괄 | B00-0451-0000 | isDesignatedAs |
참고자료
- 안동태사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333700150000
- 안동태사묘 http://www.tsm3.or.kr/ → 6.25 동란(1950~1953)때는 유사(有司) 장봉섭(張鳳燮)이 생명을 걸고 폭격 속에 들어가 삼태사(三太師)의 위패(位牌)를 모셔와 성곡동 장(張)씨의 광풍정(光風亭)에 안치하였다가 다음해 능동 권(權)씨 보판각(譜板閣)으로 옮겨 모시다가 동란후 1958년에 태사묘(太師廟)가 완공(完工)되고 환안(還安)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 고려 태조 왕건(王建)은 삼공신(三功臣)에게 병산대첩(甁山大捷)의 공(功)으로 삼한벽상삼중대광아보공신(三韓壁上三重大匡亞父功臣)의 직위를 제수(除授)하고 이어 태사(太師)에 오르게 하였다.
-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안동 태사묘, 영남일보, 2016.2.19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160219.010380842340001 → 경모루(敬慕樓) 현판이 달린 누각을 통과해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숭보당과 동·서재다. 숭보당은 회의를 하고 참가자들이 숙식을 하는 강당이다. 동재와 서재에는 김씨, 권씨, 장씨 대종회라는 현판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신(新)안동김씨의 시조는 김선평, 안동장씨의 시조는 장정필, 안동권씨의 시조는 권행이다. 권행은 본래 신라에 속한 김씨였다고 한다. 후에는 후백제에 속한 고창의 수령으로 있다가 고려 공신이 된 후 태조로부터 권씨 성을 하사받았다. / 숭보당 오른쪽에 있는 작은 협문을 지나면 태사묘 관리인이 주거하는 주사 건물과 보물각이 자리한다. 보물각에는 삼태사의 유물과 왕으로부터 받은 교지가 보관되어 있다. / 보물각 옆길로 들어가면 제법 넓은 뒷마당에 차전각이 자리한다. 안동 차전놀이는 병산전투의 승리를 기념해 전승된 것이다. 견훤을 낙동강으로 밀어 넣었다는 데서 생겼다고도 하고 삼태사가 수레 여러 개를 만들어 타고 견훤의 군대를 밀어냈다는 데서 생긴 놀이라고도 한다. 전각에는 놀이의 용구가 비치되어 있다고 한다. / 기록에 의하면 고려 성종 2년인 983년에 처음으로 삼공신의 제사를 안동부사가 거행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묘우는 조선 중종 때 세운 것으로 6·25전쟁으로 소실되어 다시 세웠다.
- [권태사 신도비] 항목 참조 → 안동권씨(權氏)의 시조인 권행(權幸)의 신도비이다. 원래 권행의 성은 김씨로 고창(안동의 옛 지명) 지역의 호족이었으며, 930년 고려와 후백제가 싸운 고창전투에서 왕건(王建)을 도와 승리하였다. 왕건은 고려를 건국한 후, 권행의 공을 인정하여 공신에 책봉하고 권씨를 사성(賜姓)했으며, 고창 지역에 '동쪽을 평안하게 하다'는 뜻의 '안동'이라는 새 이름을 붙였다.
- 안동 차전놀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34677 → 현지의 전설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후백제의 왕 견훤(甄萱)은 지렁이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왕이 되어 안동 땅에 와서 고려 태조 왕건(王建)과 결전을 하게 되었다.이 때에 권(權)·김(金)·장(張)씨의 세 장군이 있어 왕건 편을 들었고, 안동사람들은 견훤이 지렁이임에 착안하여 낙동강에 소금을 풀어 짜게 만든 다음 얼개로 밀어 견훤을 낙동강에 빠지게 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왕건은 자기를 도와준 세 장군을 삼태사(三太師)라 불러 그 충성을 치하하였으며, 그 뒤 이 승전을 기념하여 동채싸움이 시작되었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