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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산군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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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1년 9월 20일 (월) 05:37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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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산군관청
돌산군관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돌산군관청
한자 突山軍官廳
주소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방답길 51-6 (군내리)
지정(등록) 종목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55호
지정(등록)일 1987년 9월 18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궁궐·관아/관아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돌산군관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1

돌산군관청은 조선시대 전라좌수영에 속한 수군 기지인 방답진(防踏鎭)의 군관청이다. 방답진은 중종 17년(1522)에 설치되어 고종32년(1895)에 폐지되었는데, 군관청을 지은 것은 1765년 전후(또는 1872년 이전)로 추정된다. 1896년 방답진 대신에 돌산군이 설치되면서 군관청은 치안을 맡는 순교청으로 개조되었으며, 일제 강점기에 한때 우편소로 쓰이기도 했다.

정면 4칸 옆면 3칸의 ‘ㄷ’ 자형 평면이며, 지붕은 홑처마에 옆에서 보았을 때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왼쪽으로부터 정주간 1칸, 부엌 2칸, 오른쪽으로 큰방 1칸, 광 1칸, 누마루가 있다.

돌산군관청은 흔하지 않은 ‘ㄷ’ 자형 관아 건축물이라는 데에 그 가치가 있다.

2

돌산군관청은 조선 시대에 해안 방비를 담당하였던 방답진의 군관청이다. 고종 9년(1872)에 간행된 『방답진지도』에서 관청 위치에 배를 두었다고 했으니, 관청은 그 뒤에 지은 것으로 추측한다. 1896년 돌산군이 설치되면서 건물의 대부분이 돌산군 행정관아로 사용되었다.

전라좌도수군절도사영에 속해 있던 방답진은 중종 17년(1522)에 설치되었고, 고종 32년(1895) 폐지될 때까지 370년이 넘게 존속하였다. 외적이 들어오는 길목이었던 만큼 첨사*를 책임자로 삼아 돌로 성을 쌓았는데, 둘레는 1,195m이고 높이는 3.9m의 사다리꼴 평면 형태이다.

서문터 밖으로 적의 침입으로부터 전선**을 보호하거나 적이 침입한 곳으로 즉시 출동할 수 있도록 인공적으로 깊게 판 방답진 굴강이 있다.

건축물 옆에 위치한 돌산군관청 비석군은 군내리 곳곳에 흩어져 있던 비석들을 2004년 12월에 옮겨 온 것이다. 비석군에는 방답진 첨사 선정비*** 2기, 돌산 군수 공덕비**** 2기, 지역 유지 시혜비***** 2기, 돌산군 설치에 공헌한 대신들의 공적비 2기 등이 있다.

현재 돌산군 군내리 일대에는 옛 방답진의 축성과 문터, 배를 만들었던 곳, 비석 등이 남아있어 바다 방어의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첨사(僉使) : 조선 시대에, 절도사에 속한 진(鎭)에서 수군을 거느려 다스리던 군직(軍職).
  • 전선(戰船) : 전투에 쓰는 배.
  • 선정비(善政碑) : 예전에, 백성을 어질게 다스린 벼슬아치를 표창하고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 공덕비(功德碑) :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그 행적을 새겨서 세운 비.
  • 시혜비(施惠碑) : 베풀어 준 은혜에 감사하기 위하여 세우는 비석.

영문

1

2

영문 해설 내용

1

이 건물은 조선시대 전라좌수영에 속한 수군 기지인 방답진의 관청으로, 1872년 이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방답진은 1522년에 설치되었고, 1895년에 폐지되었다. 1896년 돌산군이 설치되면서, 이 건물은 치안을 맡는 관청 건물로 개조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우편소로 쓰이기도 했다.

건물은 관아 건축물로서는 흔치 않은 ㄷ자형 구조이다. 왼쪽에서부터 정주간, 부엌, 큰방, 광, 난간을 두른 누마루가 있다.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2

이 건물은 조선시대에 전라좌수영에 속한 수군 기지인 방답진의 관청이다.

1872년에 간행된 『방답진지도』에는 현재 관청 위치에 배를 두었으며, 따라서 이 건물은 그 뒤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돌산군 군내리 일대에는 옛 방답진 성벽, 문터, 배를 만들었던 곳, 비석 등이 남아있어, 해안 방어의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방답진은 1522년에 설치되었다. 외적이 들어오는 길목에 있었던 만큼 돌로 성을 쌓았는데, 둘레는 1,195m이고 높이는 3.9m의 사다리꼴 평면 형태이다. 서문터 밖에는 인공적으로 깊게 판 굴강이 있어, 적의 침입으로부터 배를 보호하거나 적이 침입한 곳으로 즉시 출동할 수 있도록 했다. 이후 방답진은 군제 개편으로 1895년 폐지되었다. 1896년 돌산군이 설치되면서, 건물의 대부분이 돌산군 관청으로 사용되었다.

건물 옆에 위치한 비석들은 군내리 곳곳에 흩어져 있던 것들을 2004년 12월에 옮겨 온 것이다. 방답진의 책임자인 첨사의 비석 2기, 돌산 군수의 비석 2기, 지역 유지의 비석 2기, 돌산군을 설치하는 데 공헌한 대신들의 공적비 2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