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농암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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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국문집필

기존 국문

이 건물은 조선 중기의 학자인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1467~1555)의 위패와 영정을 봉안한 곳으로 분강서원(汾江書院)의 사당이다.

순조(純祖) 27년(1827)에 건립되었으며 원래는 도산면 분천리에 있었으나 안동댐 건설로 1975년 도산면 운곡리로 옮겼다가 2005년 농암유적지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현 위치로 다시 이건 하였다.

현재의 사당은 신문(神門)과 사당로 구성되어 있으며 담장은 토석담장이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우물마루로 바닥을 깔고 벽에는 농암의 영정을 모셨는데 경상도 관찰사 시절의 모습이라고 한다. 1800년대 건물이지만 고식이 잘 남아 있다.

수정 국문

초고

이곳은 조선시대의 학자이자 문신 농암 이현보(聾巖 李賢輔, 1467-1555)의 위패와 영정을 봉안한 곳으로, 이현보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분강서원(汾江書院)의 사당이다.

안동에서 태어난 이현보는 연산군 4년(1498)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지냈다. 노년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퇴계 이황 등과 교유하며 자연을 노래하는 시조 등의 문학 작품을 많이 남겼다.

사당은 순조 27년(1827)에 처음 세워졌다. 원래는 도산면 분천리에 있었으나 안동댐 건설로 1975년 도산면 운곡리로 옮겼고, 농암 유적지를 정비하면서 2005년에 지금의 위치로 다시 옮겨 지었다.

'숭덕사'라는 현판을 걸고 서원 경내 가장 안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건물 주위에는 낮은 담을 둘렀다.

사당 벽에 모셔져 있는 영정은 후손들이 이재관(李在寬, 1783-1837)으로 하여금 모사하게 한 별본으로, 1827년에 제작되었다. 이현보가 중종 31년(1536) 경상도 관찰사로 재임하던 시절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하며, 원본은 보물 제872호로 지정되어 현재 안동의 한국국학진흥원에서 보관하고 있다.

  • 보물로 지정된 이현보 초상(보물 제872호)은 한국국학진흥원에 소장되어 있으므로 현재 사당에 걸려 있는 영정은 별본 영정(농암영정 후사본 및 금서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63호)으로 판단됨.
  • 분강서원은 1868년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1967년에 복원되었으며, 1976년 안동댐 건설로 인해 옮겨졌던 것을 농암 종택을 정비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지었다.

1차 수정

농암사당은 조선시대의 학자이자 문신인 농암 이현보(聾巖 李賢輔, 1467~1555)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곳이다.

안동에서 태어난 이현보는 연산군 4년(1498)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지냈다. 노년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 등과 교유하며 자연을 노래하는 문학 작품을 많이 남겼다.

농암사당은 순조 27년(1827)에 처음 세워졌다. 원래는 도산면 분천리에 있었으나 안동댐 건설로 1975년 도산면 운곡리로 옮겼고, 2005년에 지금의 위치에 농암유적지를 조성하면서 다시 옮겨 지었다. 현재 이곳에는 이현보를 기리는 분강서원이 있는데, 농암사당은 서원 경내 가장 안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덕을 숭상하는 사당’이라는 뜻의 ‘숭덕사’라는 현판을 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