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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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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1년 9월 18일 (토) 02:01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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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애당
수애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수애당
한자 水涯堂
주소 경북 안동시 임동면 수곡용계로 1714-11 (수곡리)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6호
지정(등록)일 1985년 8월 5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수량/면적 3동
웹사이트 수애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수애당은 독립운동가 수애 류진걸(水涯 柳震傑, 1899~?)이 1939년에 지은 집이다. 임하댐 건설로 1987년 원래의 위치에서 200m 떨어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수애당이 위치한 무실마을은 1550년 무렵 류성(柳城, 1533~1560)이 정착한 이후 전주류씨 후손들이 460여년 간 대대로 살고 있다.

류진걸은 1922년 중앙대 경제학과에 입학하였고, 1925년 조선민중대회에서 관동대지진으로 학살된 동포를 추도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항일운동에 참여하였다. 대학 졸업 후에는 일본 최대 건설회사인 대창토건에서 근무하였으며, 나진·선봉 항만, 동해남부선 등 당시 우리나라의 대형 건설사업에 참여하였다.

수애당은 대문채, 정침, 고방채 등 총 3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대문채는 외양간과 창고를 두고 통칸 온돌방을 두었다. 고방채는 창고, 고방, 화장실, 부엌, 온돌방으로 연결되어 있다. 정침은 팔작기와집으로, 왼쪽에서부터 부엌, 안방, 웃방, 대청, 중간방, 사랑방이 있으며 안방 뒤에는 우물마루로 된 방을 두었다. 수애당에 쓰인 목재는 소나무 중에서도 으뜸으로 여겨지는 춘양목(春陽木)으로 보존상태가 아주 좋다. 현재 류진걸의 손자 부부가 전통 한옥스테이로 운영하고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수애당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류진걸(1899-?, 호: 수애)이 1939년에 지었다. 임하댐 건설로 1987년 원래의 위치에서 200m 떨어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이 집이 위치한 수곡리는 전주류씨 집성촌으로, 1550년 무렵 류성(1533-1560)이 정착한 이후 그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고 있다.

류진걸은 1922년 중앙대 경제학과에 입학하였고, 1925년 관동대지진으로 학살된 동포를 추도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항일운동에 참여하였다. 대학 졸업 후에는 일본 최대 건설회사에서 근무하며, 항만과 철도 등 당시 한국의 대형 건설사업에 다수 참여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납북되었다.

수애당은 대문채, 정침, 고방채로 구성되어 있고, 소나무 중에서도 으뜸으로 여겨지는 목재를 사용해서 지어졌다. 대문채에는 외양간, 창고, 온돌방이 있고, 고방채에는 창고, 고방, 화장실, 부엌, 온돌방이 있다. 정침은 대청을 중심으로 양옆에 온돌방이 2개씩 있고, 맨 왼쪽에 부엌이 있다. 현재 류진걸의 손자 부부가 한옥스테이로 운영하고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