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성성재종택
안동 성성재 종택 |
|
대표명칭 | 안동 성성재 종택 |
---|---|
한자 | 安東 惺惺齋 宗宅 |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부포로 668 (예안면)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59호 |
지정(등록)일 | 2013년 4월 8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
수량/면적 | 일곽 |
웹사이트 | 안동 성성재종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
해설문
국문
성성재종택은 조선시대의 학자 성성재 금난수(惺惺齋 琴蘭秀, 1530~1604) 가문의 종택이다. 종택이란 한 문중에서 맏이로 이어 온 가족이 대대로 사용해온 집을 말한다. 정확한 건축 시기는 알 수 없으며, 지금의 건물은 18세기 무렵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금난수는 안동 예안면 출신으로, 명종 16년(1561) 생원시에 합격한 뒤 여러 관직을 지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향에 은거하며 노모를 모셨고, 정유재란 때에는 의병을 일으켜 안동을 방어하는 데 공을 세웠다.
종택은 ‘ㅁ’자형의 본채, 사당, 아래채로 이루어져 있다.
본채의 앞면에는 중문을 기준으로 좌우에 작은사랑과 큰사랑을 배치했으며, 건물 전면에 툇마루를 달았다. 큰사랑은 사랑방과 마루, 마루 뒤편의 책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안방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부엌과 고방이 있고, 오른쪽에는 대청과 상방이 있다. 안방을 중앙에 두는 이러한 구조는 18세기 안동 지역의 상류 주택에서 발견되는 독특한 형태이다. 안방과 부엌 위쪽에는 높은 다락을 두었고, 채광과 환기를 위한 창을 달았다.
사당은 본채 오른쪽에 축대를 높게 쌓은 후 담장을 둘러 별도의 공간으로 구획하였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성성재종택은 조선시대의 학자 금난수(1530-1604, 호: 성성재) 가문의 종가가 대대로 사는 집이다. 정확한 건축 시기는 알 수 없으며, 지금의 건물은 18세기 무렵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금난수는 안동 예안면 출신으로, 1561년 생원시에 합격한 뒤 여러 관직을 지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향에 은거하며 노모를 모셨고, 정유재란 때에는 의병을 일으켜 안동을 방어하는 데 공을 세웠다.
종택은 본채, 사당, 아래채로 이루어져 있다. ‘ㅁ’자형의 본채 앞면에는 안채로 출입하는 중문을 중심으로 양옆에 작은사랑채와 큰사랑채를 배치했다. 안채는 안방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부엌과 고방이 있고, 오른쪽에는 대청과 상방이 있다. 보통 대청을 가운데 두는데, 이 집과 같이 안방을 중앙에 두는 것은 18세기 안동 지역의 상류 주택에서 발견되는 독특한 구조이다. 안방과 부엌 위쪽에는 다락을 두었고, 채광과 환기를 위해 창을 달았다.
본채 오른쪽에 있는 사당은 축대를 높게 쌓은 후 담장을 둘러 별도의 공간으로 구획하였다.
참고자료
- 성성재 종택, 디지털안동문화대전 http://andong.grandculture.net/andong/toc/GC02400818
- 안동의 고택, 성성재 종택(惺惺齋 宗宅), 겨울섬, 개인 블로그, 2021.3.7. https://gotn.tistory.com/946 -> 내부 사진 상세
- 고산정 항목 참조 -> 금난수 행적 정리
- 『안동 성재 금난수 종가』(김윤규, 경북대학교 출판부, 2019) 단행본 검색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