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중

군산 해망굴

HeritageWiki
Lyndsey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1년 9월 6일 (월) 13:05 판 (영문)

이동: 둘러보기, 검색


군산 해망굴
Haemanggul Tunnel, Gunsan
군산 해망굴,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군산 해망굴
영문명칭 Haemanggul Tunnel, Gunsan
한자 群山 海望堀
주소 전라북도 군산시 해망동 1000-21
지정(등록) 종목 국가등록문화재 제184호
지정(등록)일 2005년 6월 18일
분류 등록문화재/기타/공공용시설
시대 일제강점기
수량/면적 높이 4.5m, 길이 131m
웹사이트 군산 해망굴,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해망굴은 1926년 군산 중앙로와 수산업 중심지 해망동을 연결하기 위해 만든 토목 구조물로 높이 4.5m, 길이 131m의 반원형 터널이다.

일제강점기에는 군산신사, 신사광장(현 서초등학교), 공회당, 도립군산의료원, 안국사(현 흥천사) 등이 인근에 있어 교통의 요충지였다. 한국전쟁 중에는 북한군 지휘본부가 해망굴 안에 자리하여 연합군 공군기의 공격을 받았고 그 흔적이 지금까지 남아있다.

군산의 근현대사를 보여주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영문

Haemanggul Tunnel, Gunsan

Haemanggul Tunnel was built in 1926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to connect Haemang-dong, where the fisheries of the Gunsan area were concentrated, to downtown Gunsan and Gunsan’s inner harbor. The tunnel measures 4.5 m in height and 131 m in length.

Gunsan was one of the three Korean port cities forced to open up following the Japan–Korea Treaty of 1876 in which Korea was forced to open its borders to foreign trade. Gunsan became a strategic place from which Imperial Japan could export rice produced in the Jeolla-do region. This tunnel was built at the same time as Gunsan Port to facilitate the extortion of local rice production.

During the Korean War (1950-1953), Gunsan was seized by the North Korean forces and the tunnel served as the headquarters of their command. The traces of bullets were from an air attack made by Allied Forces at the time.


  • I switched “port” for a “port city” (strategic location) because later in the paragraph we mention that the port (facility) was built only after the treaty was signed, it could be confusing. - Maria
  • 1876는에 개항했으면에도 불구하고 40년동안 군산항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설명됩니다. 이 부분은 이해가 안 됩니다.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한데, 뭐가 좋을지 모르겠어요. - 린지

영문 해설 내용

해망굴은 군산 지역의 수산업 중심지인 해망동과 군산 도심, 군산 내항을 연결하기 위해 일제강점기인 1926년에 만든 토목 터널이다. 높이는 4.5m이고, 길이는 131m이다.

군산은 1876년 조일수호조규가 체결된 이후 개항된 3곳의 항구 중 하나로, 전라도 지역에서 생산된 쌀을 일제가 수탈하기 위한 거점이 되었다. 이 터널은 당시 쌀 수탈을 위해 군산항을 건설하면서 함께 만들어졌다.

한국전쟁 중에는 군산 지역을 점령했던 북한군의 지휘 본부로 쓰이기도 했으며, 연합군 공군기의 공격을 받아 생긴 총탄 흔적이 남아있다.

참고자료

  • 군산 해망굴, 디지털군산문화대전 http://gunsan.grandculture.net/gunsan/toc/GC05700680 -> 군산 해망굴은 군산 도심과 해망동을 연결하기 위해 1926년 건립한 터널로서 근대 도시 군산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토목 구조물이다. 군산항의 제3차 축항 공사가 시작되던 1926년 당시 가장 번화가였던 현재의 중앙로를 서쪽으로 연장하여 군산 도심과 해망동을 연결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군산 해망굴은 볼트 형태로 축조하여 출입구 쪽은 석축으로 마감하였고, 내부는 콘크리트로 마감하였다. 높이 4.5m이고 길이는 131m이다. 군산 해망굴은 자동차의 통행을 막아 보행자의 통행만 가능하며, 2005년 6월 18일 국가등록문화재 제184호로 지정되었다. 군산 해망굴은 근대기에 조성된 대표적인 토목 구조물로서 최초 건립 당시의 형태를 잘 간직하고 있어 근대 도시 군산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6·25 전쟁 중 인민군 지휘소가 자리하면서 연합군 공군기들의 공격으로 생긴 총탄의 흔적이 남아있어 현대사의 중요한 역사적 무대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 쌀 수탈의 한이 어린 통로 – 전북 군산 해망굴, 지역N문화, 역사문화유산 https://ncms.nculture.org/legacy/story/1030 -> 구 군산시청 앞의 중앙로(구 명치정통)는 군산 원도심을 동서로 연결하는 도로이다. 중앙로의 서쪽 끝에 해망령(海望嶺)이 있는데 일제는 군산시내와 수산물의 중심지인 해망동(현 해신동), 미곡을 반출하던 군산 내항을 연결하기 위해 해망령에 터널을 만들었다. 1926년 제3차 군산항 축항공사가 벌어졌는데 이때 해망굴(海望堀)도 함께 건설되었다. 해망굴 공사는 돌산을 깨서 만드는 난공사여서 인부 10여 명이 사망했는데 일제는 희생된 조선인 인부의 시신조차 제대로 수습하지 않았다. 이에 군산 노동운동의 대부이자 독립운동가인 조용관 선생이 투쟁을 벌여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고 한다. 한국전쟁 중에는 군산에 주둔했던 인민군의 지휘본부가 연합군의 공습을 피하기 위해 해망굴에 설치되기도 했다. 근대기에 만들어진 군산의 대표적 토목 구조물인 해망굴은 2005년 6월 18일 등록문화재 제184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