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추원재
2021년 국문집필
기존 국문
이 건물은 고려말 충신이며 효자인 상촌(桑村) 김자수(金自粹)의 어머니 묘소 아래에 있었다. 김자수는 충정왕(忠定王) 3년(1351)에 안동시 금곡동에서 태어났다. 공민왕(恭愍王) 23년(1374)에 문과에 급제하여 형조판서에 올랐으나, 고려가 망하자 절의를 지켜 은둔하였다. 조선 태종(太宗)이 형조판서에 임명하자 어머니 손씨는 아들에게 관을 준비시키고 뒤따르게 하여 경기도 광주군 오포면 추현에 이르러 자결하였다. 광주군 오포면 신련리에 묘소가 있다.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집으로 신실(神室)과 전실을 중심으로 3면에 1칸 마루를 두었다. 원래 추원재는 월곡면 노산리에 있었는데, 1973년 안동댐 건설로 인하여 이 곳으로 옮겼다.
수정 국문
초고
이 건물은 고려 말 충신이자 효자로 이름난 김자수(金自粹, 1351-1413)의 제사를 모시는 재사이다.
조선 후기에 세워졌다고 전하나, 정확한 건립 시기는 알 수 없다.
김자수는 고려가 망한 후 고향인 안동에서 은거하였으며, 고려가 망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경기도 광주에 이르러 자결하여 고려에 대한 절의를 지키고자 하였다.
건물은 온돌방을 건물 중앙에 두고 앞과 좌우를 마루로 두른 평면을 취하고 있으며, 마루를 감싸고 난간을 둘렀다. 온돌방은 전실과 신실(神室)로 구분되어 있으며, 문으로 공간을 구분했다.
본래 월곡면 노산리에 있는 어머니 일직 손씨의 묘 아래에 있었는데, 안동댐 건설로 인해 1973년에 현재 자리로 옮겨졌다.
추원재 앞에는 김자수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효자비가 자리한 비각이 있다.
- 손씨의 묘제를 위한 재실이라는 정보도 있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이 안됨.
1차 수정
추원재는 고려 말 충신이자 효자로 이름난 김자수(金自粹, 1351~1413)의 제사를 모시는 재사이다. 조선 후기에 세워졌다고 전하며, 원래 월곡면 노산리에 있는 어머니 일직손씨의 묘소 아래에 있었는데, 안동댐 건설로 인해 1973년 현재 자리로 옮겨졌다.
김자수는 공민왕 23년(1374) 과거에 장원급제한 후 고려 조정에서 여러 관직을 지냈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3년간 시묘살이를 하여 정려를 받았다. 고려가 망한 뒤 고향인 안동에서 은거하였으며, 조선 태종(1400~1418 재위)이 형조판서에 임명하였으나 나아가지 않고 자결하여 고려왕조에 대한 절의를 지켰다.
추원재는 건물 중앙에 온돌방을 두고, 방의 전면과 양옆에는 난간을 두른 마루를 배치하였다. 온돌방은 전실(前室)과 신실(神室)로 구분되어 있으며, 두 방 사이에는 문을 달아 공간을 구분하였다. 추원재 앞의 비각에는 김자수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효자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