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건물지(제천 장락사지)
장락사지 제12건물지 長樂寺址 第12建物址 Building Site No.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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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안내판: 제천 장락사지 |
해설문
국문
장락사지 제12건물지는 고려 시대 중기에 세워진 건물이 있던 자리이다. 제12건물지 위에 제14건물지가 만들어지면서 제12건물지의 흔적은 대부분 없어졌다. 주춧돌 1기, 적심석* 1기, 기단**을 만든 석열 일부만 남아 있는데, 주춧돌과 적심석은 제13건물지의 서쪽 기단열 아래에 있다. 제10건물지의 2차 건물지 흔적을 걷어 낸 후에 제12건물지의 남쪽 기단으로 사용된 석열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 석열은 제11건물지의 동쪽 석열과 수직을 이루고 있다. 적심석 위에 두께 10cm 정도의 기와쌓임층이 있었으며, 여기에서 ‘무인유월대길戊寅六月大吉’이 새겨진 기와가 나왔다.
- 적심석: 돌 따위를 쌓을 때 안쪽에 심을 박아 쌓는 돌
- 기단 : 집터를 잡고, 터를 반듯하게 다듬은 다음에 터보다 한층 높게 쌓은 단
영문
Building Site No. 12
Building Site No. 12 consists of the remains of a building dating back to the middle period of the Goryeo dynasty (918-1392). Most of the remains of the building were destroyed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when the buildings from the Building Site No. 14 were constructed atop of it. One foundation stone, one pillar base stone, and a part of the stone platform structure remain, but the foundation stone and the pillar base stone are buried under the western section of the platform on Building Site No. 13. In the process of excavation, a stone structure used as the southern platform of the building from Building Site No. 12 was revealed after removing the traces of the second building from Building Site No. 10. This revealed stone structure is perpendicular to the eastern part of the stone structure from Building Site No. 11. On top of the pillar base stone, there is a layer of roof tiles that measures around 10 cm in thickness. Among them, a roof tile with the inscription corresponding to a year* from the mid-Goryeo period was found.
- I have no idea which year it refers to - 1098? 1158? 1218?...
- 영문해설 is identical to 국문, I feel like there’s too much “technical” info and not enough explanation about what each piece of info indicates or suggests.
영문 해설 내용
제12건물지는 고려시대 중기에 세워진 건물이 있던 자리이다. 조선시대에 제14건물지가 제12건물지 위에 만들어지면서 제12건물지의 흔적은 대부분 없어졌다. 주춧돌 1기, 적심석 1기, 기단을 만든 석열 일부만 남아 있는데, 주춧돌과 적심석은 제13건물지의 서쪽 기단열 아래에 있다. 조사과정에서 제10건물지의 2차 건물지 흔적을 걷어 낸 후에 제12건물지의 남쪽 기단으로 사용된 석열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 석열은 제11건물지의 동쪽 석열과 수직을 이루고 있다. 적심석 위에 두께 10cm 정도의 기와 쌓임층이 있었으며, 여기에서 ‘무인유월대길(戊寅六月大吉)’이 새겨진 기와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