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정사(문헌서원)
효정사 孝靖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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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안내판: 문헌서원 |
해설문
국문
효정사는 이곡, 이색, 이종덕, 이종학, 이종선, 이맹균, 이자, 이개 등 8인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문헌서원의 사우*이다.
효정사는 문헌서원이 ‘문헌’으로 사액**되기 전의 이름이다. 1575년 한산군수로 온 이성중(李誠中)이 기린산 기슭현 기산면 영모리에 목은 이색 묘 아래에 사당을 짓고 문효공 가정 이곡과 문정공 목은 이색을 제향하며 두 분의 시호인 ‘문효’와 ‘문정’의 호를 따서 ‘효정묘(孝靖廟)’라 하였다. 그 후로 20여 년이 지난 1597년 정유재란 때 일본군에 의해 소실되자 1610년(광해군 2)에 명곡 이산보(鳴谷 李山甫)의 사위 충청도관찰사 정엽(鄭曄)과 아들 이경탁(李慶倬) 등이 고향인 한산면 고촌리에 서원을 세웠고, 1612년에 사액**서원이 되었다.
그러나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문헌서원은 문을 닫았으나 1969년에 효정사가 있던 이곳의 이색 묘역 일원에 복원되었고, 2007년~2013년 서원을 재정비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 사우: 조상의 위패를 모셔 놓은 집.
- 사액: 임금이 서원 등에 이름을 지어 새긴 편액을 내리던 일.
영문
영문 해설 내용
효정사는 이곡(1298-1351), 이색(1328-1396), 이종덕(1350-1388), 이종학(1361-1392), 이종선(1368-1438), 이맹균(1371-1440), 이개(1417-1456), 이자(1480-1533) 등 한산이씨 선현 8인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1575년 한산군수로 부임한 이성중(1539-1593)이 기린산 기슭(지금의 영모리) 이색의 묘 인근에 이곡과 이색을 기리는 사당을 지었다. 사당의 이름은 이곡과 이색의 시호인 ‘문효’와 ‘문정’을 따서 ‘효정묘’라 하였다.
이후 강당을 비롯한 다른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1594년 서원의 모습을 갖추었으나 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 이색의 7대손인 이산보(1539-1594)의 사위이자 충청도 관찰사였던 정엽(1563-1625)과 이산보의 아들 이경탁(1572-?)이 1610년 고촌리로 옮겨 서원을 다시 지었다. 서원은 1871년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1969년 사당이 처음 지어졌던 이색 묘 앞으로 옮겨 서원을 다시 지었다.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서원을 정비하였고, 사당 건물도 이때 새로 지었다.
한산이씨
- 이곡(1298-1351)
- 이색(1328-1396)
- 이종덕(1350-1388)
- 이맹균(1371-1440)
- 이종학(1361-1392)
- 이숙묘
- 이형증
- 이예견
- 이자(1480-1533)
- 이예견
- 이형증
- 이숙묘
- 이종선(1368-1438)
- 이계주
- 이개(1417-1456)
- 이계주
- 이종덕(1350-1388)
- 이색(1328-13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