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 동상
황현 동상 Statue of Hwang Hye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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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황현 동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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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Statue of Hwang Hyeon |
주소 | 전라남도 광양시 광양읍 우산리 우산공원 내 |
해설문
국문
황현(黃玹, 1855~1910)은 1888년 생원시에 급제하였으나 부정부패가 만연한 현실 정치에 실망하여 관직에 진출하지 않고 평생 초야에 묻혀 지냈다. 동학농민운동을 생생하게 묘사한 『오하기문』과 1864년부터 1910년 경술국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상을 기록한 『매천야록』을 남겼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에 통분하여 중국 망명을 시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907년 신학문 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호양학교 설립에 앞장섰다.
1910년 8월 일제가 한국을 병탄하자 절명시 4수와 유서를 남기고 순국하였다.
영문
Statue of Hwang Hyeon
This statue erected in 2004 depicts Hwang Hyeon (1855-1910, pen name: Maecheon), a scholar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Hwang Hyeon was born in Bonggang-myeon Township of Gwangyang and passed the classics licentiate examination in 1888. However, disappointed with rampant political corruption, he chose to not pursue an official career and instead devoted his life to academic pursuits.
Hwang wrote a number of books, including Chronicle Written Under a Paulownia Tree (Oha gimun), which provides a detailed account of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1894-1895), and the Unofficial Records of Hwang Hyeon (Maecheon yarok), which chronologically describes the historical events in Korea between the years 1864 and 1910.
After Korea was illegally made a protectorate of Japan in 1905, Hwang attempted to leave for China to seek political asylum but did not succeed. In 1907, having realized that the implementation of Western scientific and cultural achievements was important for the country’s progress, Hwang established the Hoyang School in today’s Gurye area. In 1910, upon Japan’s forced annexation of Korea, Hwang wrote down his will and a death poem and then took his own life.
영문 해설 내용
이 동상은 조선 말의 학자인 황현(1855-1910)을 추모하기 위해 2004년에 세워졌다.
황현은 광양시 봉강면 출신으로, 1888년 생원시에 급제하였으나 부정부패가 만연한 현실 정치에 실망하여 관직에 진출하지 않고 평생 학문에 전념하였다.
동학농민운동의 경과를 자세히 기록한 『오하기문』과 1864년부터 1910년까지의 조선 역사를 편년체로 서술한 『매천야록』 등 다양한 저술을 남겼다.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이에 통분하여 중국 망명을 시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907년에는 신학문을 통한 국가 발전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지금의 구례 지역에 호양학교를 세우는 데 앞장섰다. 1910년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기자 절명시와 유서를 남기고 자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