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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성산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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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성산산성
Seongsansanseong Fortress, Haman
대표명칭 함안 성산산성
영문명칭 Seongsansanseong Fortress, Haman
한자 咸安 城山山城
주소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광정리 569
지정(등록) 종목 사적 제67호
지정(등록)일 1963년 1월 21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시대 삼국시대
수량/면적 227,821㎡
웹사이트 "함안 성산산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함안에서 진동으로 가는 도로변의 조남산[139.4m] 정상부를 둘러쌓은 퇴뫼식산성이다. 성벽의 상부가 많이 허물어져 흙과 돌을 섞어 쌓은 것처럼 보이나, 1991년부터 최근까지 진행되었던 발굴조사에서는 납작하게 모난 돌들을 수직에 가깝게 쌓아 올린 것이 확인되었다. 전체 길이 1.4km 성벽은 안쪽의 작은 분지를 감싸면서 높은 곳을 따라 쌓여져 동서가 짧고 남북이 긴 타원형의 평면을 취하고 있다. 동쪽과 남쪽의 성벽에서 성문터가 조사되었고, 성안에서는 저수시설과 4개 여의 건물터도 확인되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와 함주지(咸州誌)에는 가야고성(加耶古城)으로 기록되어 있다. 옛날 성산에 얽힌 전설에 의하면 아라가야가 신라에 점령되었을 때 용감하게 싸우던 한 장군이 전쟁에 패했음을 원통히 여겨 울면서 성산으로 들어갔는데 그 뒤로부터 장군을 본 사람도 없으며 장군의 행적이나 사후의 흔적 등 전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신라에 패한 아라가야의 원통함을 성산과 함께 전하고 있다. 그러나 발굴조사에서는 주로 신라시대의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신라기와, 토기편, 목제품, 과일씨 등이 출토되었고, 동문터 안쪽에서 출토된 245점의 목간(木簡)은 산성의 역사뿐 아니라, 우리 고대사를 새롭게 밝혀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 퇴뫼식산성 : 산 정상부 일대를 둘러서 쌓은 성
  • 저수시설(貯水施設) : 물을 인공적으로 모으는 시설
  • 고당(高堂) : 여러 사신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던 큰 집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조남산[139.4m] 정상부에 위치한 산성이다. 전체 길이 1.4km이다. 성벽은 안쪽의 작은 분지를 감싸면서 높은 곳을 따라 쌓여져 있다. 동서방향이 짧고 남북방향이 긴 타원형이다. 동쪽과 남쪽의 성벽에서 성문터가 조사되었고, 성안에서는 저수시설과 4개의 건물터도 확인되었다. 과거 문헌에는 가야고성(加耶古城)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발굴조사에서는 신라시대의 유물들이 출토되어 가야멸망 후에 쌓은 신라산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발굴조사에서 많은 목간(木簡)이 출토되어 기록이 부족한 고대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