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별동묘
윤별동묘 Shrine of Yun Sa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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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윤별동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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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Shrine of Yun Sang |
한자 | 尹別洞廟 |
주소 | 경상북도 예천군 보문면 미호길 173 (미호리)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93호 |
지정(등록)일 | 1995년 12월 1일 |
분류 |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
수량/면적 | 2동 |
웹사이트 | 윤별동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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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윤별동묘는 세조 2년(1456)에 조선 초기의 대학자 별동 윤상(尹祥)을 제사 지내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윤상은 예천군의 향리로 관리 생활을 시작하여 예조 정랑, 영주와 대구의 수령 등 여러 관직을 거쳐 대사성*까지 역임한 인물이다. 세종 30년(1448)에는 예문관 대제학*이 되어 원손(뒷날 단종)에게 학문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윤별동묘의 사당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이고, 지붕은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낮은 기단 위에 세워져 있다. 가운데 칸은 자연석인 주춧돌 위에 둥근 기둥을, 좌우 옆 칸은 네모 기둥을 세우고 위쪽 부분에 창방*을 걸었다. 가운데 칸에는 두 짝의 여닫이문을 달았고, 양쪽 옆 칸에는 빛이 들 수 있도록 창문을 두었다. 이는 사당을 지을 때는 흔히 사용하지 않는 독특한 구성이다.
- 대사성(大司成): 성균관의 으뜸 벼슬인 정3품 관직
- 대제학(大提學): 홍문관·예문관에 소속된 정2품 관직
- 창방(昌防): 건축물의 기둥머리에서 기둥과 기둥을 연결해주는 가로 목재
영문
Shrine of Yun Sang
This shrine was established in 1456 to commemorate Yun Sang (1373-1455, pen name: Byeoldong), a scholar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Yun Sang was born in Yecheon to a hereditary local elite family. He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396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thus becoming a part of the aristocracy. In 1448, he was given the duty of teaching the grandson of King Sejong (r. 1418-1450), who later became King Danjong (r. 1452-1455).
The shrine stands atop a low stone foundation. The frontmost pillars stand apart from the wall, creating an narrow veranda in front of the entrance. The middle two pillars are round, while the outer two pillars are square. The shrine features a hinged two-panel door in the center with a window to each side. Such architectural features are not commonly seen in shrines.
- 건물 추후의 수리 등 확인 필요.
영문 해설 내용
조선시대의 학자 윤상(尹祥, 1373-1455, 호 별동)을 기리기 위해 1456년에 세운 사당이다.
윤상은 예천의 향리 가문 출신으로, 1396년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지내면서 양반 신분에 올랐다. 1448년에는 세종(재위 1418-1450)의 손자(훗날의 단종)를 가르치는 임무를 맡기도 하였다.
낮은 기단 위에 세워진 건물은 정면에 4개의 기둥이 있는데, 가운데 2개는 둥근 기둥이고 양옆의 2개는 네모 기둥이다. 정면 중앙에 출입을 위한 여닫이문을 달고, 그 좌우에 채광을 위한 창문을 낸 것이 독특하다. 이러한 형태는 사당에서 흔히 사용하지 않는 구성이다.
참고자료
- [종가] 7. 예천 윤씨 종가, 경북일보, 2016.2.21. https://blog.naver.com/kwongunho/30167917371 -> 현재 예천군 미호리에는 윤상을 제향하는 불천위사당(不遷位祠堂·1456년)이 시도유형문화재 제293호로 지정돼 있다. 이 사당에는 별동 윤상과 그의 부인 정부인(貞夫人) 안동(安東) 전씨(全氏)의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매년 음력 3월 8일 예천윤씨 종가에서 제사가 이뤄진다.
- 조선 성리학의 선구자, 별동 윤상(別洞 尹祥, 1373~1455), 예천 박물관 – 예천 인물 및 유물 소개, https://www.ycg.kr/open.content/museum/education/edu.reference/?i=1620 -> 윤상은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의 문인이자 당대의 대유학자인 죽계 조용(竹溪 趙庸)의 문하에서 사서육경(四書六經)과 성리서(性理書)를 배우고 연구했는데, 이는 윤상의 학문적 바탕이 되었다. 조용을 통해 정몽주의 학통을 이어받아 조선 초기 성리학을 유지, 진작시켰고, 김숙자에게 『주역(周易)』을 가르쳐 정몽주 계열의 도통(道統) 계승과 학문적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윤상은 경학(經學)에 조예가 깊었던 성리학(性理學)의 선구자였으며, 경북 북부 지역의 초기 성리학적 학풍(學風)을 조성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1448년(세종 30) 예문관제학으로서 원손(元孫, 단종)이 성균관에 입학하자 박사가 되어 학문을 가르쳤는데, 많은 선비들이 이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성균관에서 오랫동안 교육을 담당하였는데,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쓴 김시습(金時習), 대제학 김구(金鉤), 김숙자(金叔滋) 등 수많은 현관(顯官)과 명사(名士)들이 그의 문하에서 배출되어 개국 이래 최고의 사범(師範)으로 칭송받았다. 1451년(문종 1) 벼슬에서 물러나 예천으로 낙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