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간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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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간묘
Ganmyo Tomb, Gyeongju
경주 간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경주 간묘
영문명칭 Ganmyo Tomb, Gyeongju
한자 慶州 諫墓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황성동 471번지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기념물 제31호
지정(등록)일 1982년 8월 4일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기타
수량/면적 1,990㎡
웹사이트 경주 간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신라 제26대 진평왕(재위 579∼632)대의 충신이었던 김후직(金后稷)의 무덤으로 전해 온다. 김후직은 진평왕 2년(580)에 병부령*을 지냈다. 진평왕이 사냥만을 즐기고 나라 일을 돌보지 않아 중지할 것을 충고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그는 병이 들어 죽게 되었을 때 세 아들에게 유언을 하여 왕이 사냥 다니는 길목에 묻게 해 죽은 뒤에라도 왕을 깨우쳐 주겠다고 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크게 뉘우치고 다시는 사냥을 하지 않았다고 하여 충신으로 불려온 것이다.

죽은 후에도 왕에게 했던 그의 충성을 사람들은 ‘묘간(墓諫)’이라 칭송하였고, 그의 무덤을 간묘라고 불렀다. 묘 앞에 조선 숙종 36년(1710) 경주부윤 남지훈(南至熏)이 세운 비석이 남아있다.


  • 병부령(兵部令): 신라 시대 병부(兵部)의 으뜸 벼슬. 법흥왕 때에는 1명을 두었다가 진흥왕과 태종 때 각각 1명씩 늘려 모두 3명을 두었다. 재상과 사신(私臣)을 겸하기도 하였다.

영문

Ganmyo Tomb, Gyeongju

This tomb is said to belong to Kim Hu-jik, a loyal subject of King Jinpyeong (r. 579-632) of the Silla kingdom (57 BCE-935 CE).

In 580, Kim served as the Minister of Defense. King Jinpyeong enjoyed hunting and had no interest in state affairs, and although Kim admonished him to stop hunting, the king did not listen. When Kim Hu-jik was on his death bed, he told his three sons that he wanted to be buried along the king’s hunting path, so that he may remind the king of his advice even after death. Hearing about this, King Jinpyeong was deeply regretful and gave up hunting. Kim Hu-jik’s tomb came to be known as Ganmyo, meaning “Tomb of Admonishment,” and Kim was remembered for his loyalty. A tombstone erected in 1710 by the local magistrate Nam Ji-hun stands in front of the to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