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읍성
청도읍성 Cheongdoeupseong Walled Tow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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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청도읍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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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Cheongdoeupseong Walled Town |
한자 | 淸道邑城 |
주소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교촌리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기념물 제103호 |
지정(등록)일 | 1995년 1월 14일 |
분류 |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
수량/면적 | 6,570㎡ |
웹사이트 | 청도읍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는 한편, 군사 및 행정 기능을 담당하던 성이다. 청도읍성은 기록상 「세종실록지리지」에 ‘군 동쪽 7리에 석성이 있는데 둘레가 190보이고 성내 물이 없다’라고 해 조선초에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현재의 읍성은 임진왜란 직전 왜의 침략에 대비해 동래에서 서울로 향하는 주요 도로상 주군은 성을 수리하고, 성이 없는 읍은 신축하라는 명령에 따라 현 위치에 청도군수 이은휘가 2년만에 완공하였다. 규모는 둘레가 약 1.8km에 모양은 방형이고, 높이는 문헌에 5척 5촌이고 현재 남은 높이는 2.2∼2.8m 정도이다.
임진왜란 때 성내 건물과 성문이 모두 불타 없어진 것을 현종 9년(1669년)에 서문(무회루)과 북문, 숙종 34년(1708년)과 정조 22년(1798년)에 동문(봉일루)를 각기 새로 건립했다. 고종 7년(1870년)에는 남문(진남루)를 새로 지어 4대문을 갖추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성내 도로 확장공사로 문루가 헐리고 성벽이 훼손되었다.
읍성은 발굴조사를 통해 치성(5개소), 옹성(2개소), 동・북・서・남문과 동문 옆에 폐문루 등 5대문, 성내 못과 시기별・위치별로 다양한 성벽 쌓기기술이 확인되었다. 읍성 안팎으로는 객사인 도주관, 동헌, 향교, 석빙고, 척화비와 같은 문화재가 남아 있고, 읍사무소를 비롯한 주민들이 살고 있어 조선시대 읍성 역사와 변천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청도군은 발굴조사와 각종 고증 조사를 통해 읍성 일부를 보수복원해 역사문화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 현종 9년은 1668년임.
영문
Cheongdoeupseong Walled Town
A walled town, called eupseong in Korean, was established at an important location in an area to protect residents and serve military and administrative functions.
영문 해설 내용
읍성이란 지방 주요 지역에 쌓은 성으로, 지방 주민들을 보호하고 군사, 행정 기능을 담당하던 곳이다.
1454년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에 ‘청도군 동쪽에 석성이 있다’는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 청도읍성은 조선 초기에 이미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 직전 왜의 침략에 대비해, 동래(지금의 부산)에서 서울로 향하는 주요 도로상에 위치한 지역의 성을 수리하고, 성이 없는 읍은 신축하라는 왕명이 있었다. 청도읍성도 1590년부터 1592년까지 당시 군수인 이은휘가 지금의 위치에 완공하였다.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성문과 읍성 내의 건물이 모두 불타 없어졌고, 1669년에 서문과 북문을, 1708년과 1798년에 동문을 새로 건립했다. 1870년에는 남문을 새로 지어 4대문을 갖추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성내 도로 확장공사로 문루가 헐리고 성벽이 훼손되었다.
읍성의 평면은 정사각형이고, 규모는 둘레가 약 1.8km에 현재 남은 높이는 2.2-2.8m 정도이다. 2000년대에 발굴조사를 통해 치성 5개소, 옹성 2개소, 성문 4개소, 문루 1개소 등의 터가 확인되었고, 성 안에는 연못이 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성벽의 위치와 성벽을 쌓은 시기에 따라 다양한 성벽 쌓기 기술이 사용되었음이 밝혀졌다. 읍성 안팎으로는 동헌, 객사, 향교, 석빙고, 척화비 등 조선시대 지방 행정과 관련된 유적들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