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규대사 묘
영규대사 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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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영규대사 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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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靈圭大師 墓 |
주소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 산5번지 |
지정(등록) 종목 | 충청남도 기념물 제15호 |
지정(등록)일 | 1977년 1월 6일 |
분류 | 유적건조물/무덤/무덤/봉토묘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2,281㎡ |
웹사이트 | 영규대사 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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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영규대사묘는 임진왜란 때의 승병장인 영규대사(靈圭大師, ?~1592)의 묘이다.
영규대사는 공주 출신으로 계룡산 갑사에서 출가한 후 서산대사 휴정(西山大師 休靜)의 문하에서 불법을 공부하였고, 계룡산 갑사 청련암과 금산 보석사에서 수도하면서 무예를 익혔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을 모집하여 최초로 승병장이 되었으며, 의병장 조헌(趙憲)과 함께 청주성 전투에서 왜군을 물리치는 공을 세웠다. 그의 승전보로 인해 곳곳에서 승병이 일어났다.
당시 의주까지 피란을 갔던 선조는 승전 소식을 듣고 그에게 벼슬과 옷을 하사하였다. 그런데 하사품이 도착하기 전에 금산전투에서 700여 명의 의병과 함께 싸우다가 부상을 당하였고, 현재의 묘 부근에서 숨을 거두었다. 대체로 승려들은 임종 후 화장을 하는데, 계룡산 갑사의 승려들은 그가 숨을 거둔 장소에 특별히 무덤을 만들었다.
1810년(순조 10) 대사의 방계 후손인 박경진(朴景震), 박경태(朴景兌)가 묘비를 세웠다. 봉분 앞 상석에는 영규대사의 호를 따서 ‘의병승장 기허당(義兵僧將 騎虛堂)’이라고 새겼다.
영문
Tomb of Monk Yeonggyu
This is the tomb of the Buddhist monk Yeonggyu (?-1592, pen name: Giheodang), who served as an army commander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1592.
Born in Gongju, Yeonggyu was ordained as a monk at Gapsa Temple of Gyeryongsan Mountain. He studied the Buddhist canon under Monk Hyujeong (1520-1604) and practiced worship as well as martial arts at Gapsa Temple's Cheongnyeonam Hermitage and Boseoksa Temple of Geumsan Mountain. With the outbreak of the Japanese invasion in 1592, Yeonggyu mobilized monks to fight the invaders under his command. In 1593, the joint forces of Monk Yeonggyu and the civilian army commander Jo Heon (1544-1592) gained the first victory for Korea in the Battle of Cheongju. Due to his military success, more monk armies began to form across the country.
King Seonjo (r. 1567-1608), who was taking refuge near the northern border of the country at the time, heard the news of Monk Yeonggyu’s military achievements and bestowed him with an official title and honorary robes. However, even before the royal gifts arrived, Yeonggyu had already been wounded and died after the Battle of Geumsan. Although Buddhist monks were usually cremated after death, Yeonggyu's body was buried in a tomb near the place where he died.
In 1810, Bak Gyeong-jin and Bak Gyeong-tae, both descendants of Monk Yeonggyu's family, erected a tombstone at his tomb. In front of the tomb mound, there is a stone table which bears an inscription saying "The Tomb of Yeonggyu Giheodang, the Monk Commander of a Civilian Army."
영문 해설 내용
조선시대의 승려이자 임진왜란 때의 승병장인 영규(?-1592)의 묘이다.
영규는 공주 출신으로 계룡산 갑사에서 출가한 후 휴정(1520-1604)의 문하에서 불법(佛法)을 공부하였고, 계룡산 갑사 청련암과 금산 보석사에서 수도하면서 무예를 익혔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을 모집하여 승병장이 되었으며, 의병장 조헌(1544-1592)과 함께 청주성 전투에서 임진왜란 최초의 승리를 이끌었다. 그의 승전보로 인해 전국 곳곳에서 승병이 일어났다.
당시 의주까지 피난을 갔던 선조(재위 1567-1608)는 승전 소식을 듣고 영규에게 벼슬과 옷을 하사하였다. 그런데 하사품이 도착하기도 전에, 영규는 금산전투에서 700여 명의 의병과 함께 싸우다가 부상을 당하였고, 현재의 묘 부근에서 숨을 거두었다. 승려는 대체로 임종 후 화장을 하는데, 계룡산 갑사의 승려들은 그가 숨을 거둔 장소에 특별히 무덤을 만들었다.
1810년 대사의 방계 후손인 박경진, 박경태가 묘비를 세웠다. 봉분 앞 상석에는 영규대사의 호를 따서 ‘의병승장 기허당 영규의 묘’라고 새겼다.
문맥요소
Nodes
ID | Class | Label | Description |
---|---|---|---|
영규대사_묘 | Place | 영규대사_묘 | |
영규대사 | Actor | 영규대사(靈圭大師_?-1592) | |
임진왜란 | Event | 임진왜란(1592) | |
서산대사 | Actor | 서산대사(西山大師_1520-1604) | |
조헌 | Actor | 조헌(趙憲_1544-1592) | |
청련암 | Place | 청련암(靑蓮庵) | |
보석사 | Place | 보석사(寶石寺) | |
청주성_전투 | Event | 청주성_전투 | |
금산_전투 | Event | 금산_전투 | |
J34-0015-0000 | Heritage | (충청남도_기념물_제15호)_영규대사_묘 |
Links
Source | Target | Relation |
---|---|---|
영규대사_묘 | 영규대사 | isTombO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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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 영규대사 | isRelated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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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규대사 | 청련암 | isRelated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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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규대사 | 청주성_전투 | participatesIn |
영규대사 | 금산_전투 | participatesIn |
조헌 | 청주성_전투 | participatesIn |
조헌 | 금산_전투 | participatesIn |
참고자료
- 충청남도·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충청남도 문화재대관 3 도지정문화재Ⅱ』, 2009.
- 영규대사묘(靈圭大師墓),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333400150000
- 영규대사묘(靈圭大師墓),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37244
- 영규대사 묘,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www.grandculture.net/ko/Contents?dataType=99&contents_id=GC017014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