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봉산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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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봉산서당
Bongsanseodang Village Study Hall, Yecheon
대표명칭 예천 봉산서당
영문명칭 Bongsanseodang Village Study Hall, Yecheon
한자 醴泉 鳳山書堂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88호
지정(등록)일 2021년 7월 30일



해설문

국문

봉산서당은 조선 선조 30년(1597) 성오당 이개립(省吾堂 李介立,1546~1625)*이 강학활동을 위해 건립한 영남지역 초창기 서당으로, 조선 정조 8년(1784)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서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ㅡ’자형 건물로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양 옆에는 방을 두고, 앞에는 누마루**를 두었다. 출입은 누마루 양끝의 판문을 통해 이루어지며, 가공이 적은 자연적 부재와 지름이 다른 기둥을 사용하여 투박하면서도 안정감이 느껴진다. 북쪽을 향해 배치된 건물은 부지의 지형적 특성과 조망을 우선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서당은 이개립의 사후에도 그의 제자들과 10여개의 문중이 모여 만든 감천 봉산유계에 의해 지금까지 유지·보존되고 있다.

봉산서당은 조선시대 민간 교육기관으로 오늘날까지 그 형태가 잘 남아있으며, 건립에 관한 기록도 잘 전하고 있어 역사적·건축적 가지가 있다.


  • 이개립: 퇴계학파를 대표하는 학봉 김성일의 제자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많은 전공을 세웠음
  • 누마루(樓마루): 다락처럼 높게 만든 마루

영문

Bongsanseodang Village Study Hall, Yecheon

A village study hall, called seodang in Korean, was a local private education institution established to teach classical Chinese and elementary Confucian classics.

Bongsanseodang Village Study Hall was established in 1597 by Yi Gae-rip (1546-1625), a scholar and civilian army commander. Born in Yecheon, Yi passed the classics and literary licentiate examination in 1567 and led a civilian army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1592. Later, Yi returned to his hometown where he dedicated himself to teaching. After Yi’s death, the study hall was managed by a mutual assistance society, established by his students and the descendants of his clan.

The study hall was moved here from its original location in 1784. It features a wooden-floored hall in the center, an underfloor-heated room on either side, and a narrow wooden veranda along the front. The hall can be accessed through doors installed at the ends of the veranda. The hall was built out of minimally processed natural materials, and its pillars differ in thickness, which gives the building a rustic but well-balanced appearance.

영문 해설 내용

서당은 마을 단위로 설립한 초등 단계의 사설교육기관으로, 주로 유학에 바탕을 두고 한문을 가르쳤다.

봉산서당은 조선시대의 학자이자 의병장이었던 이개립(1546-1625)이 1597년에 설립하였다. 이개립은 예천 출신으로 1567년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이개립 사후에는 제자들과 문중 후손들이 조직한 계에 의해 서당이 관리되었다.

서당 건물은 원래 다른 곳에 있던 것을 1784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 대청을 중심으로 양옆에 온돌방을 두고, 앞에는 누마루를 두었으며, 누마루 양끝의 판문을 통해 출입할 수 있다. 가공을 많이 하지 않은 자연적인 부재를 사용하여 기둥의 지름이 각기 다르고, 전체적으로 투박하면서도 안정감이 느껴지는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