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공 수복동도비
무의공 수복동도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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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무의공 수복동도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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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武毅公 收復東都碑 |
주소 | 경북 경주시 용담로 79-41 (황성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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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이 비석은 무의공 박의장(武毅公 朴毅長, 1555~1615)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861년 경주관아에 처음 세운 후 몇 차례 옮겨졌다가 2001년 황성공원으로 이건되었다. 무의공이 임진왜란 당시 경주성을 회복하고 수호하였으므로 경주 사람들이 그의 공을 추모하여 세운 비이다.
무의공은 1577년에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경주부 판관으로 왜적에게 빼앗겼던 경주성 탈환전에 참전했다. 이 전투에서 이장손(李長孫)이 만든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를 사용하여 큰 전공을 세웠다. 이어 7년 동안이나 경주에서 왜적의 공격을 막아냈다. 조정에서는 그의 공을 높게 평가하여 경상좌도병마절도사로 승진시켰다.
-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 : 조선 선조 때 이장손(李長孫)이 발명하였다. 표면은 무쇠로 둥근 박과 같고, 내부는 화약과 빙철(憑鐵 ; 얇은 철 조각) 등이 들어 있으며, 화포로 발사하는 인마살상용 폭탄의 일종.
영문
Stele of Bak Ui-jang
This stele was erected in 1861 to commemorate the life and achievements of Bak Ui-jang (1555-1615), a military official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Bak Ui-jang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577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He was serving as executive assistant of the Gyeongju Local Government upon the outbreak of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He defended Gyeongju for the entire war, most notably in four battles between 1592 and 1593. The battles were aided by the invention of an artillery shell (bigyeongjincheonnoe) by Bak's colleague Yi Jang-son. For his contributions during the war, Bak was bestowed with the title of meritorious subject in 1605. He later served as the army commander of Gyeongsang-do Province.
The stele originally stood within the Gyeongju Local Government and was moved several times before being relocated to Hwangseong Park in 2001.
- 덕후루 - 영덕에 있는 재실
- 비격진천뢰의 공식 영어 명칭은 bomb shell인데, 이 용어는 '예쁜여자'라는 뜻을 가지게 되어서 원래 의미로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그냥 artillery shell이라고 합니다.
- 경주읍성 - this was the first place that a cannon bomb technology invented by Yi Jang-son was used.
- rocket-launched grenade이라는 말도 봤어요.
- 판관은 assistant magistrate이라고 해도 될까요?
- 비석의 규모, 생김새에 대한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