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석동 산성
흑석동 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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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흑석동 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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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黑石洞 山城 |
주소 | 대전광역시 서구 흑석동 산 83 일원 |
지정(등록) 종목 |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15호 |
지정(등록)일 | 1990년 5월 28일 |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
시대 | 백제 |
수량/면적 | 23,210㎡ |
웹사이트 | 흑석동 산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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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흑석동산성은 대전 분지 남쪽에 자리한 거점 산성 중 하나로, 백제시대에 정상부 주변을 돌로 쌓은 성이다. 남으로는 동서 방향으로 낮은 골짜기가 있어 대전에서 연산 지방으로 가는 통로로 이용할 만큼 교통의 요지이었다. 지금도 호남선이 이 지역을 지나고 있다. 성은 전체적으로 삼각형 형태이며, 남쪽의 통로를 감시하는 기능이 있다. 북으로는 구봉산 사이의 낮은 지형을 조망할 수 있다. 또한 두계천이 갑천과 만나 북으로 둥글게 돌아가고 나머지 세 방면은 산지가 둘러싸고 있어 강을 이용하여 물류의 이동이 편리한 독립된 거점의 기능이 있다.
성벽의 남쪽 부분에 출입문 자리가 남아 있고, 내부에는 평탄한 대지들이 있는네, 이곳에서 토기와 기와 조각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건물터로 추정된다.
『삼국사기』에 ‘강가에 있으면서 높고 험하다’라고 묘사된 것으로 보아 나당연합군과 백제 부흥군의 격전지로 유명한 진현성(眞峴城)으로 비정되는 전략적인 요충지이다. 나당연합군이 이곳을 함락하여 신라의 식량을 운반하는 길을 확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흑석동 산성은 대전 분지 남쪽에 위치한 고무래봉(해발 197m) 정상을 둘러 쌓은 석성이다. 백제가 사비(지금의 부여) 지역에 도읍을 두고 있던 6-7세기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산성은 경사가 급하고 하천이 주위를 감아 도는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해 있으며, 또한 대전에서 연산 지방으로 가는 통로로 이용되던 교통의 요지였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백제가 나당연합군과 격전을 벌이던 당시 나당연합군이 이곳을 함락하여 식량을 운반하는 길을 확보하였다고 한다.
성벽의 둘레는 약 470m로, 바깥쪽은 돌로 쌓고 안쪽은 흙과 작은 돌을 섞어 채우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성벽의 남쪽 부분에서 문이 있던 자리가 확인되었다. 성 안쪽의 평탄한 곳은 건물이 있었던 자리로 보이며, 이곳에서 백제의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와 기와조각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참고자료
- 「대전 흑석동 산성」, 박순발 외 2명, 『백제연구』(46), 2007 -> 2006년 지표조사 결과 발표(보루 / 와요지 발굴 내용 소개 포함)
- 흑석동 산성,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332500150000&pageNo=1_1_1_1
- 흑석동 산성,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65897
- 흑석동산성, 대전광역시 서구 문화유적지 https://www.seogu.go.kr/kor/content.do?mnucd=SGMENU0500045 -> 현재 통로로 이용되고 있는 곳이 남문터로 추정되며 문 폭은 10여m에 달한다. 성내의 동서 쪽에 넓은 평지가 있어 건물터로 추정된다. 서벽내의 평지에서는 뚜껑그릇 등 백제시대 토기편과 다양한 무늬의 기와편이 발견되었다. 속칭 '밀암산성(密岩山城)' 이라고도 하는데, [삼국사기]를 비롯한 사서(史書)에는 '진현성 (眞峴城)' 이란 명칭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 즉, 백제가 나당연합군에게 멸망당한 이후 백제의 왕통을 회복하기 위해 모여든 백제부흥군의 활약과 연관되어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