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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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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1년 6월 23일 (수) 13:0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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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종택
퇴계종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퇴계종택
한자 退溪宗宅
주소 경북 안동시 도산면 백운로 268 (토계리)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기념물 제42호
지정(등록)일 1982년 12월 1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생활유적
수량/면적 2,119㎡
웹사이트 퇴계종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이 건물은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종택으로 원래의 건물은 없어졌으나 1929년 선생의 13대 사손(嗣孫) 하정공(霞汀公)이 옛 종택의 규모를 참작하여 지금의 터에 새로 지었다. 종택의 오른쪽에는 추월한수정(秋月寒水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이 집은 정면 6칸, 측면 5칸의 ‘口’자형으로 대문과 정자 그리고 사당 등 세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높은 석축 위에 둥근 기둥과 네모 기둥을 섞어서 지었다.

사대부집의 공간영역을 갖추고 있으며 솟을대문과 정자 등 품위와 규모를 갖춘 종가로 전통 생활도구도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수정 국문

초고

이 건물은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종가가 대대로 살아오는 집이다.

이황의 장손인 몽재(蒙齋) 이안도(李安道, 1541~1584)가 처음 지었다. 1715년(숙종 41)에 정자인 추월한수정(秋月寒水亭)을 건축하였다. 이후 10세손 고계(古溪) 이휘령(李彙寧,1788~1861)이 구택의 동남쪽 건너편에 새로 집을 지어 옮겨 살았다. 그러나 1907년 왜병의 방화로 두 곳 종택이 다 불타 버렸고, 현재의 퇴계 종택은 1926~1929년에 13세손 하정(霞汀) 이충호(李忠鎬, 1872~1951)의 주관으로 재건된 것이다.

총 34칸의 건물로, 5칸 솟을대문과 ㅁ자형 정침(正寢 : 주택의 가장 중심이 되는 집 또는 방)이 있는 영역, 동쪽에 약간 뒤로 처져서 같은 규모와 양식의 5칸 솟을대문과 추월한수정으로 이루어진 영역, 그 뒤쪽으로 솟을삼문과 사당이 있는 영역 등 크게 세 개의 영역이 각각 담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높은 석축 위에 둥근 기둥과 네모기둥을 섞어서 지었다.

사대부집의 공간영역을 갖추고 있으며 솟을대문과 정자 등 품위와 규모를 갖춘 종가로 전통 생활도구도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초고 수정

이 집은 조선시대의 저명한 유학자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의 후손들이 살아 온 종택으로, 이황의 장손인 이안도(李安道, 1541~1584)가 처음 지었다고 한다. 종택이란 한 문중에서 맏이로 이어 온 가족이 대대로 사용해온 집을 말한다.

이안도가 지었다는 과거의 종택 건물은 1907년 방화로 인해 불에 타 사라졌다. 지금의 가옥은 이황의 13대손 이충호(李忠鎬, 1872~1951)가 과거의 종택 규모에 맞추어 1926부터 3년에 걸쳐 지금의 자리에 새롭게 조성한 것이다.

집은 사랑채와 안채가 ‘ㅁ’자형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는 정침(正寢), 초가지붕을 올린 행랑채, 대문채가 있는 살림집 영역, 대문과 추월한수정(秋月寒水亭)이 있는 정자 영역, 삼문과 사당이 있는 사당 영역까지 크게 세 개의 영역이 담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 정침 정면에 자리한 사랑채는 왼쪽부터 작은사랑방, 책방, 사랑방, 마루방을 배치했다. 사랑방과 마루방 앞쪽에는 툇마루를 길게 놓았고, 건물 왼쪽에는 난간을 둘렀으며, 작은사랑방 옆에도 누마루처럼 보이는 작은 마루를 설치했다. 사랑채는 우익사(右翼舍)를 통해 안채와 서로 연결된다. 안채 후면에는 뒷마당을 향해 작은 툇마루를 두어 집안 여자들이 쉬면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대문채는 솟을대문의 좌우에 온돌방이 꾸며져 있으며, 대문 상단에는 이안도의 부인에게 내려진 정려를 기록한 현판이 걸려 있다.
  • 정침 오른편에 있는 추월한수정은 조선 숙종 41년(1715) 권두경(權斗經, 1654~1725)이 이황의 도학을 추모하기 위해 그가 머물렀던 곳을 찾아와 지은 건물이다. 1896년 일제의 방화로 소실된 것을 종택을 다시 지을 때 함께 복원하였다. 정자로 진입하기 위한 솟을대문 상단에 걸려있는 '퇴계선생구택(退溪先生舊宅)'이라는 현판은 권두경이 추월한수정을 지을 당시에 직접 쓴 것이라고 한다.
  • 집 인근에(남쪽 방향으로 약 3km?) 도산서원이 있다.
  • 이충호(李忠鎬, 1872~1951)는 이곳에 세거하던 임씨들의 종택을 매입하여 이건하고, 추월한수정은 옛 건물처럼 재건하였다고도 한다. (‘대구 멋쟁이 신사’ 블로그의 포스팅 참조)

1차 수정

퇴계종택은 조선시대의 학자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 가문의 종택으로, 이황의 장손인 이안도(李安道, 1541~1584)가 처음 지었다고 한다. 종택이란 한 문중에서 맏이로 이어 온 가족이 대대로 사용해온 집을 말한다.

이안도가 지은 원래의 건물은 1907년 방화로 인해 소실되었다. 지금의 가옥은 이황의 13대손 이충호(李忠鎬, 1872~1951)가 과거의 종택 규모에 맞추어 1926부터 3년에 걸쳐 새롭게 조성한 것이다.

퇴계종택은 정침 영역, 정자 영역, 사당 영역 등 세 부분으로 나뉘며, 각 영역이 담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정침 영역에는 사랑채와 안채가 ‘ㅁ’자형을 이루는 정침, 초가지붕을 올린 행랑채, 대문채가 있고, 솟을대문에는 이안도의 부인 안동권씨의 절개를 기리는 정려가 걸려 있다.

정자 영역에 있는 추월한수정(秋月寒水亭)은 조선시대의 문신 권두경(權斗經, 1654~1725)이 이황을 추모하여 숙종 41년(1715)에 처음 지었다. 원래의 정자는 1896년 소실되었고, 1920년대에 전국 문중의 성금을 모아 다시 지었다. 현재 추월한수정은 전통 예절교육이나 문중 모임의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정자 영역으로 들어가는 대문에는 ‘퇴계선생구택(退溪先生舊宅)’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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