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춘우재
봉화 춘우재 Chunujae Ritual House and Shrine, Bonghw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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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봉화 춘우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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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Chunujae Ritual House and Shrine, Bonghwa |
한자 | 奉化 春雨齋 |
주소 |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계서당길 6-28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92호 |
지정(등록)일 | 2021년 4월 1일 |
분류 | 등록문화재 / 기타 / 기타 시설물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건물 2棟 / 153㎡ |
웹사이트 | 경상도 영주제명기,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봉화 춘우재는 조선 시대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부용당 성안의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별묘와 재실(齋室)이다. 오늘날까지 ‘춘향사’라는 이름으로 불천위(不遷位, 큰 공훈을 치하하여 영원히 사당에 모시기를 나라에서 허락한 신위) 제사를 매년 모시고 있다. 조선 정조 23년(1799) 성안의의 후손들이 창녕성씨 문중의 서당을 재실로 바꾸고 그 곁에 별묘를 지었다. 후대에는 재실 앞에 주사住舍를 지어 제사의 부속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서당을 재실로 고쳐 짓는 과정에서 대청 앞 난간을 허물고 내부를 수리하는 등 변화가 있었다. 다만 건물의 구조 형태는 건립 당시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건물의 전체적인 배치는 일(一)자형 재실과 ㄷ자형 주사가 튼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배치 양식은 아주 드문 것으로, 봉화 춘우재를 제외하고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73호인 대지재사(大枝齋舍)가 유일하다.
춘우재는 문중의 서당이 재실로 바뀐 모습과 그 경위를 밝히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조선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불천위 제사가 전승되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높다.
영문
Chunujae Ritual House and Shrine, Bonghwa
This is a ritual house used for the preparation of ancestral rituals to the civil official Seong An-ui (1561-1629, pen name: Buyongdang), who was also a civilian army commander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1592(?)*.
Born in Changnyeong, Seong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571. The following year with the break of the Japanese invasions, he led a civilian army in the Changnyeong area. After the war, Seong served several official posts at the royal court.
The building of the ritual house was originally a village study hall built by Seong in 1613 when he moved to Gapyeong-ri Village. In 1799, his descendants repurposed the building into a ritual house and constructed a shrine next to it. Later, another auxiliary building was added in front of the ritual house. An ancestral ritual is performed here annually. The head house of Seong I-seong (1595-1664, pen name: Gyeseo), the third son of Seong An-ui, is located 300 m from this ritual house.
- It seems that at least as early as in 1597 he was already working in the royal court.
영문 해설 내용
춘우재는 조선시대의 문신이자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성안의(1561-1629, 호: 부용당)를 기리는 제사를 준비하기 위한 재실이다. 재실 오른쪽에 있는 부용당 사당도 함께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성안의는 창녕 출신으로, 1591년 과거에 급제하였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향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조정에서 여러 관직을 지냈다.
춘우재는 원래 성안의가 1613년 봉화 가평리 마을로 이주한 뒤, 가문의 후손들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서당이었다. 1799년 성안의의 후손들이 서당을 재실로 바꾸고 그 옆에 사당을 지었으며, 후대에는 재실 앞에 ㄷ자형의 부속 건물을 지었다. 지금도 매년 제사를 지내고 있다.
춘우재에서 약 300m 떨어진 곳에는 성안의의 셋째 아들인 성이성(1595-1664, 호: 계서) 가문의 종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