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파산성
비파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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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비파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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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琵琶山城 |
주소 | 대전광역시 동구 이사동 산18 |
지정(등록) 종목 |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25호 |
지정(등록)일 | 1990년 7월 10일 |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
시대 | 백제 |
수량/면적 | 1,686㎡ |
웹사이트 | 비파산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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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비파산성은 백제시대 때 정상부를 돌려 가며 돌로 쌓은 성으로, 보문산 남쪽에 있다. 대전 분지의 남쪽은 동쪽보다 산성의 분포가 조밀하지 않다. 또한 계족산성을 둘러싸고 유기적인 보조 산성이 다수 분포한 대청호 주변에 비하여 산성의 입지가 독립적이다.
성은 북으로 돌출된 산 정상부와 서쪽 사면에 부정형에 가까운 장방형 평면을 하고 있다. 또한 북쪽과 동쪽이 높고 서남쪽이 낮아 산내 지역과, 대별동에서 정생동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감시하는 기능이 있다.
성벽의 길이는 380m 정도인데 경사면에 기대어 자연석을 쌓았다. 남벽의 중간에서 약간 서쪽으로 치우친 지점과 서쪽 벽의 중간 부분에는 출입구인 문 터가 남아 있다. 성벽 상태가 좋은 지점에는 방형에 가까운 자연석을 쌓았는데, 이 같은 수법은 월평동산성이나 계현산성에서도 보이고 있어 이 성이 백제시대에 축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성내에서 발견되는 세발토기나 단지, 기와 등으로 보아도 6세기 말~7세기 초에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비파산성은 비파치 고개 서북쪽에 있는 산 정상(해발 300m)을 둘러 쌓은 석성이다. 백제가 사비(지금의 부여) 지역에 도읍을 두고 있던 6-7세기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는 기원전 18년 한성(지금의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건국되었다가, 475년에 웅진(지금의 공주) 지역으로 도읍을 옮겼고, 538년에 사비로 다시 도읍을 옮겼다.
성에서는 대전에서 금산 방면으로 향하는 도로를 조망할 수 있으며, 대전 시내의 남쪽도 내려다보인다. 따라서 이 성은 이 방향의 적을 감시하는 동시에 인근에 있는 보문산성 및 북쪽 방향의 계족산에 위치한 여러 성들과 연계하기 위해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성벽의 둘레는 약 380m로, 자연석을 경사면에 기대어 쌓아 만들었으며, 세 곳에 성문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문의 흔적은 두 군데에서만 확인되었다. 성 안에서는 백제 때의 것으로 추청되는 세발 토기와 기와 조각 등이 출토되었다.
- 성의 이름은 고개 이름을 따서 비파산성이라고도 하고, 마을 이름을 따서 소호동산성이라고도 부른다. 성의 모양이 악기 비파를 닮아 비파성이라고 부른다는 설도 있다.
- 성벽 둘레 수치에 차이가 있음(동구 홈페이지 350 / 문안 380) - 지자체 제공 문안 기준으로 작성했으나 확인 필요.
- 문지에 대한 정보 차이 있음(동구 홈페이지 3곳 / 문안 두 곳) - 조합해 작성했으나 확인 필요함.
참고자료
- 비파산성,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5254 -> 대전광역시 동구 대별동에서 소호동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비파치고개를 넘어야 한다. 이 고개 북쪽 표고 300m의 산위에 테뫼식(산 정상을 둘러 쌓은 성)으로 쌓은 석축산성이다.고개이름을 따서 비파산성 또는 동네이름을 따서 소호동산성(所好洞山城)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비파치성(琵琶峙城)은 대전 남쪽 약 2리(里)되는 산위에 있는 석루(石壘)로서 둘레 약220칸(間)”이라 하였고, 《문화유적총람》에는 “비파산성은 산내면 이사리와 대별리 그리고 소호리의 경계에 있는 산에 석축으로 축조한 성으로 모양이 비파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허물어져 원형을 알 수 없으나 서남쪽에 문지가 있었던 것 같고 봉수대도 있었다.”고 한다.이 성에는 백제 토기편과 와편이 출토되고 있다. 현재 출입하는 남문지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그 너비는 2.2m이다. 이 산성은 보문산성(寶文山城)과 동쪽에 있는 능성(陵城), 삼정동산성(三丁洞山城)과 연계되는 산성으로 판단된다.
- 그 어딘가에 버려져 있을 역사의 시간 - 대전시 기념물 제25호 비파산성 답사, 오마이뉴스, 2007.4.6.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02583 -> 비파산성은 비파치 고개 서쪽 해발 300m의 산 정상에 약 350m를 테를 두르듯 돌을 쌓아서 만든 백제시대 산성이랍니다. / 정상 바로 옆에는 봉수대로 추측되는 곳이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성을 둘러보기 위해 봉수대 남쪽으로 내려서면 곧장 평평한 곳이 나오는데 건물지가 있었던 자리가 아닌가 추정됩니다. 대전 향토사료관 자료는 이곳에서 백제시대의 토기 조각과 기와 조각을 수습했다고 일러줍니다. / 비파산성은 그렇게 북서쪽에 있는 보문산성과 가까이 마주보고 있으며 아울러 북쪽 계족산에서 질현성, 능성, 갈현성, 삼정동산성 등으로 이어지는 능선까지 빤히 바라다 보이는 그런 위치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산성을 쌓은 목적은 마전과 금산방면에서 접근하는 적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여 집니다. 거기에 덧붙여 적이 침투해올 경우 신속하게 각 성에 재빨리 알릴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이 있습니다.
- 비파산성, 동구의 산성을 찾아서, 대전광역시 동구 관광문화축제 https://www.donggu.go.kr/dg/tour/contents/602 -> 대전에서 금산방면으로 통하는 교통로를 감시하는 목적과 대전시내의 남쪽 부분을 감시할 목적으로 백제시대 때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남문지(남문터), 북문지, 서문지 3개의 성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남북으로 길쭉한 정방형의 형태로 둘레는 약 350m에 이르는 퇴뫼식 산성이다. 비파산성 안내문 뒤로 산정상을 향해 나있는 45도 경사의 산길을 따라 150m 정도 올라가면 남문지로 추정되는 곳에 이른다. 성벽은 무너져 있으나 풍화된 화강암으로 석축된 성돌이 지면 위로 1~2단정도 일부 돌출되어 있어 산성의 흔적을 알 수가 있다. 남문지를 바라보고 좌측은 서벽, 우측이 동벽, 맞은편 넘어가 북벽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