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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두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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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두산성
견두산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견두산성
한자 犬頭山城
주소 대전광역시 동구 효평동 산83
지정(등록) 종목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20호
지정(등록)일 1990년 7월 10일
분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시대 백제
수량/면적 185,058㎡
웹사이트 견두산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견두산성은 개머리산 정상부를 돌려 가며 돌로 쌓은 산성으로 계족산성의 보조성이다. 동쪽을 경계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평면이 동서 방향으로 길다란 장방형 형태의 백제시대 산성이다.

이 산성은 이 일대에 자리한 주변의 산성들과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서쪽의 대전 분지와 동쪽 옥천·문의 지역을 연결하고 있으며, 육로와 수로를 조망하는 유리한 지역에 자리잡고 있다. 이를 통해서도 계족산성의 자성(子城: 본성에 딸려서 따로 쌓은 작은 성)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내부에는 군사를 통솔하던 평탄한 장대 터가 있고, 성의 가운데 함몰된 부분은 물을 저장하는 저수시설로 추정된다. 성벽은 남쪽으로 통하는 문 터 부근에 잘 남아 있는데, 남쪽 성벽 구간 일부에서는 성벽을 만든 수법에 차이를 보인다. 이로 볼 때 백제시대 이후 고려시대에도 성을 쌓아 사용한 듯하다. 백제시대 토기 조각 외에 신라 말 고려 초기의 토기 조각들이 그 가능성을 높여 준다.

이 산성은 동학농민운동 때 건장동(建長洞) 주민들이 직접 돌을 날라 쌓았다고 하여 민보(民堡: 백성의 힘으로 쌓아 만든 보루)라고도 전한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견두산성은 개머리산(해발 365m)의 정상 부근에 동서로 접해있는 두 봉우리의 능선을 연결해 쌓은 석성으로, 백제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산성은 인근의 육로와 수로가 모두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지어져 동쪽으로는 옥천과 문의 지역으로 연결되며, 서쪽의 계족산성이 성 안까지 들여다보인다. 이를 통해 이 성이 지역의 중심 거점인 계족산성을 보조하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현재 성벽은 남벽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무너져내렸으며, 남아 있는 성벽의 둘레는 약 280m이다.

성 안에서 건물지로 추정되는 평탄한 대지가 확인되었으며, 성의 가운데 함몰된 부분은 물을 저장하는 저수시설로 추정된다. 인근에서 백제시대와 신라 말 고려 초기의 토기 조각들이 함께 발견되어 이 성이 고려시대에도 개조되어 사용되었을 것임을 짐작해볼 수 있다.

동학농민운동 때에는 건장동(建長洞) 주민들이 직접 돌을 날라 이 성을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 성과 질현성 사이에 보조 역할을 하는 작은 성 6개가 있다.

참고자료

  • 『동구의 산성』, 대전동구문화원, 2002, pp.58-68(https://www.nculture.org/sch/totalSearchList.do) -> 전체 성벽의 둘레는 약 300m로 비교적 소규모에 해당된다.
  • 견두산성,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2153
  • [느림보의 山城 山寺 찾기]흔적도 미미한 견두산성, 충청매일, 2018.12.10. http://www.ccd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53888#09SX -> 질현성에서 견두산성(개머리산성)으로 가는 길에 봉우리마다 있는 보루 몇 개를 발견하였다. 내 눈에 띈 것만도 6개 정도 되었다. 보루는 크기가 대부분 비슷하다. 무너지기는 했지만 축성법이나 축성 시기도 비슷한 것 같다. 성 돌의 크기도 종류도 다듬은 방법도 비슷하다. 작은 보루 하나를 쌓는데 돌을 잘 다듬어 쌓은 것을 보면 같은 석공들이 한 장소에서 돌을 다듬어 각 봉우리로 옮겨서 보루를 지었을 것으로 추측되었다. 보루는 약 1개 분대 정도가 주둔할 수 있는 초소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