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남해 금오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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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안내문안 초안 작성 지원 사업

기존 국문

남해안 지역의 전형적인 석축산성으로 해발 261m 금오산 정산과 골짜기를 둘러쌓아 축조한 포곡식 산성으로 경사가 매우 가파러 접근성이 용이하지 않은 산성이다. 성의 둘레는 665m, 너비는 1~2m, 잔존 높이는 2~3m 규모이다. 성내에는 연못터와 건물터가 있으며 치(雉), 문지(門址) 등의 부속시설이 확인된다. 이 성은 고려말 조선초의 남해안 방어시설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학술자료로 평가되며 임진란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군마(軍馬)의 방목지로 활용 되었다고 전하나 현재는 방목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수정 국문

초고

경상남도 남해군 창선면 당항리 산102번지 일대에 있는 석축식 산성이다. 금오산은 해발 261m, 성의 둘레는 665m, 너비는 1~2m, 잔존 높이는 2~3m의 규모로 금오산성 주변의 경사가 매우 급하여 접근이 용이하지 않고 창선면과 삼천포 일대를 잘 살펴볼 수 있어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돌을 불규칙하게 쌓았으며 성벽에서는 치(雉)가 확인되는 곳이 있으며 서쪽과 남쪽에 각각 문지(門址)가 있었다고 알려졌으나 지금은 무너져서 흔적만 확인할 수 있다. 이 외에 성 내부의 건물 터는 정확히 확인할 수 없고 초소와 유사한 시설이 성벽 안쪽에 만들어져 있다.

1차 수정

금오산성은 금오산(해발 261m) 정상을 둘러싸고 있는 석축 산성이다. 축성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주변의 경사가 매우 급하여 접근이 용이하지 않고 창선면과 삼천포 일대를 잘 살펴볼 수 있어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돌을 불규칙하게 쌓아 축조하였으며, 성벽에서는 여장과 치(雉)가 발견되었다. 서쪽과 남쪽에 각각 문터가 있었는데, 지금은 무너져서 흔적만 확인할 수 있으며 남문터에서는 성 밖으로 물을 배출하는 배수로 시설도 발견되었다. 성 내부에서는 건물터가 정확히 발견되지 않으며, 초소와 유사한 시설이 성벽 안쪽에 만들어져 있다. 성의 둘레는 665m, 너비는 1~2m, 잔존 높이는 2~3m이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성 내부에서는 건물터가 정확히 발견되지 않으며,→ 성 내부에서는 건물터가 정확히 발견되지 않으며,
  2. 분야별 자문위원 2
    • 이 성은 금오산(해발 261m) 정상과 골짜기를 둘러쌓은 포곡식 석축산성이다. 산 정상에서는 창선면과 남해 북부지역인 삼천포와 사천, 고성 일대를 잘 살펴볼 수 있으며, 주변의 경사가 매우 급하여 군사적으로 감시와 방어에 유리한 곳에 위치한다.
      성의 둘레는 665m, 성벽의 너비는 1~2m, 잔존 높이는 2~3m 규모이다. 성벽에는 적의 화살을 피하기 위한 여장(女墻)과 성벽에 달라붙은 적을 공격하기 위한 치(雉), 그리고 북쪽과 서쪽에서 문지(門址)등의 부속시설이 확인된다. 서문지의 경우 열린 곳의 너비가 4m 정도이다. 성내 평탄지에는 건물터가, 골짜기에 해당하는 남문지 내부에는 집수시설과 배수로 등이 있다.
      성 내에서는 대부분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기와 조각들이 수습되고, 성벽을 쌓는 수법이 사천 각산산성과 비슷하여 고려시대에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쌓은 것으로 보고 있다.
  3.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2차 수정

금오산성은 금오산(해발 261m) 정상과 골짜기를 둘러쌓은 석축 산성으로,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주변의 경사가 매우 급하여 접근이 용이하지 않고 창선면과 삼천포 일대를 잘 살펴볼 수 있어, 군사적으로 감시와 방어에 유리한 곳에 위치한다.

성벽은 돌을 불규칙하게 쌓아 축조하였으며, 적의 화살을 피하기 위한 여장(女墻), 성벽에 접근하는 적을 공격하기 위한 치(雉), 그리고 북쪽과 서쪽에서 문지(門址) 등의 부속시설이 확인되었다. 남문터에서는 성 밖으로 물을 배출하는 배수로 시설도 발견되었다. 성벽 안쪽에서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기와 조각들이 발견되었다. 성의 둘레는 665m, 너비는 1~2m, 잔존 높이는 2~3m이다.

지자체 감수결과

금오산성은 금오산(해발 261m) 정상과 골짜기를 둘러쌓은 석축 산성으로,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주변의 경사가 매우 급하여 접근이 용이하지 않고 창선면과 삼천포 일대를 잘 살펴볼 수 있어, 군사적으로 감시와 방어에 유리한 곳이다.

성벽은 돌을 불규칙하게 쌓아 축조하였으며, 적의 화살을 피하기 위한 여장(女墻), 성벽에 접근하는 적을 공격하기 위한 치(雉), 그리고 북쪽과 서쪽에서 문지(門址) 등의 부속시설이 확인되었다. 남문터에서는 성 밖으로 물을 배출하는 배수로 시설도 발견되었다. 성벽 안쪽에서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기와 조각들이 발견되었다. 성의 둘레는 665m, 너비는 1~2m, 잔존 높이는 2~3m이다.

공공언어 감수결과

금오산성은 금오산(해발 261m) 정상과 골짜기를 둘러쌓은 석축 산성으로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존재하는 산성의 높이는 2~3m, 둘레는 665m, 너비는 1~2m이다. 주변 경사가 매우 급하여 접근이 용이하지 않고 창선면과 삼천포 일대를 잘 살펴볼 수 있어 경계와 방어에 유리한 군사적 요충지이다.

성벽은 돌을 불규칙하게 쌓아 만들었으며 적의 화살을 피하기 위한 여장(女墻), 성벽에 접근하는 적을 공격하기 위한 치(雉), 북쪽과 서쪽에 문이 있던 자리 등 부속 시설이 확인되었다. 남문 터에서는 성 밖으로 물을 배출하는 배수로 시설도 발견되었으며, 성벽 안쪽에서는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기와 조각들도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