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금리 심씨댁
인금리 심씨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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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인금리 심씨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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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仁今里 沈氏宅 |
주소 | 경북 안동시 풍천면 인금리 846번지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89호 |
지정(등록)일 | 2000년 9월 4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
시대 | 일제강점기 |
수량/면적 | 1곽 |
웹사이트 | 인금리 심씨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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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기존 국문
청송심씨(靑松沈氏) 전리판서공파(典吏判書公派)는 심명한(沈明漢, 1654~1711)이 이 곳에 입향(入鄕)한 후 약 300여년 간을 세거해 오고 있다. 이 집은 심명한의 10대손 심규순(沈揆舜)이 1930년대에 건립하였다 한다.
가옥이 처음 건립될 때에는 초가로 되었는데 현재는 스레트로 개량되었다. 건축연대는 비록 오래되지 않았으나 공간배치와 구조에 특이한 점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당시 주거의 변천을 이해하고, 안동 고가옥 건축수법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가옥은 전체적으로 ‘一’자형 안채와 ‘ㄴ’자형 문간채로 구성되었다. 안채와 문간채는 토담으로 구분하여 안마당과 바깥마당으로 공간을 분할한 배치를 하고 있다. 안채는 좌측으로부터 부엌, 안방, 마루, 사랑방, 사랑마루 순으로 배치하였다. 문간채는 디딜방아간, 뒤주, 고방, 외양간, 문간 순으로 구성되었다.
수정 국문
초고
이 집은 청송심씨 심규순(沁揆舜, ?~?)과 그 자손이 대대로 살아온 가옥이다. 청송심씨(靑松沈氏) 전리판서공파(典吏判書公派)는 심명한(沈明漢, 1654~1711)이 이곳에 입향(入鄕)한 후 약 300여년 간을 대대로 살아오고 있다. 현재 소유자 심우영의 아버지이며 심명한의 10세손인 심규순이 1930년경 분가할 때 이 집을 지었다. 원래는 초가였던 것을 슬레이트 지붕으로 개조하였다.
가옥은 전체적으로와 안채와 문간채로 구성되었다. 토담으로 구분하여 안채가 있는 안마당과 문간채가 있는 바깥마당으로 공간을 나누고 있다.
안채는 왼쪽부터 부엌·안방·마루·사랑마루 순으로 배치한 ‘一’자형 건물이다. 안채. 부엌 안쪽에는 부엌방을 설치하여 안방과 통하도록 하였고, 안방과 사랑방 사이에 있는 대청마루는 안방에서만 이용할 수 있도록 구성한 점이 특이하다. 사랑방 뒤로는 곳간과 1칸 온돌방을 두었는데, 이는 안마당을 통하지 않고 손님을 맞을 수 있도록 하여 안채의 독립성을 꾀한 배치로 주목된다.
문간채는 디딜방앗간·뒤주·광·외양간·대문 순서로 되어 있다. 방앗간 뒤쪽에 온돌방을 두어 ㄴ자를 이루고 있다. 외양간에서 안마당 쪽으로는 문을 달아 안채의 시선차단과 겨울철 보온을 배려하였다.
비교적 작은 규모인 집의 내부 공간과 외부 공간을 남녀 공간으로 구분한 평면 및 배치 형식이 특징적이다.
※심규순의 기록을 찾을 수 없음
초고 수정
이 집은 인금리에 처음으로 정착한 청송심씨 심명한(沈明漢, 1654~1711)의 10대손인 심규순(沈揆舜)이 분가(分家)를 위해 1930년대에 지었다고 전하는 살림집이다.
초가지붕을 슬레이트 지붕으로 개조했다가 2000년대에 다시 초가지붕으로 복원하였다.
집은 몸채와 문간채로 이루어져 있으며, 토담을 쌓아 안마당과 바깥마당을 구분하였다.
몸채는 왼쪽부터 부엌, 안방, 마루, 사랑방, 사랑마루 순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공간의 쓰임에 따라 영역을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독특한 구조를 보여준다.
안채 공간의 경우 부엌에 안방과 통하는 방을 별도로 설치했으며, 안방과 사랑방 사이의 마루는 안채 전용으로 쓰이도록 설계되었다. 또한 안마당을 통하지 않아도 손님맞이가 가능하도록 사랑방 뒤편에 곳간을 두고 바깥마당 쪽으로 객실로 활용할 수 있는 온돌방을 두어, 외부에는 사랑마루와 온돌방만 노출되도록 하였다.
문간채는 방앗간, 고방, 외양간, 대문, 순으로 배치했으며, 방앗간 뒤로 온돌방을 달아 ‘ㄴ’자형 건물이 되었다. 외양간에는 미닫이문을 달았는데, 이는 안채로 향하는 시선을 차단하는 동시에 겨울철 보온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대문 옆에는 작은 나무 창을 낸 닭장이 설치되어 있다.
이 집은 건축연대가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공간의 배치가 독특해 당시 주거의 변천을 이해하고 안동 고가옥 건축수법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 이 집의 서쪽에는 청송심씨(靑松沈氏) 악은공파(岳隱公派)의 종택인 ‘월오헌 고택’이 있다.
- 인금리는 청송심씨 악은공파(岳隱公派)의 집성촌이다.
- 2010년 블로그 포스팅 자료에는 초가 지붕으로 되어 있고 ‘복원’했다고 함. - 언제 복원했는지 지자체 확인 필요
- 안방 앞과 안방마루 뒤편에는 툇마루를 시설하였다.
1차 수정
문맥요소
Nodes
Links
참고자료
- 인금리 심씨댁, 디지털안동문화대전 http://andong.grandculture.net/andong/toc/GC02400940 심규순(沁揆舜)이 1930년경 분가할 때 지은 집이다. 원래는 초가였던 것을 슬레이트 지붕으로 개조하였다.
- 살뜰한 초가 인금리 심씨댁을 가보다, 엉뚱나미의 심심한 동네, 네이버 블로그, 2010.1.6. https://blog.naver.com/snk8513/10077872494 -> 초가지붕 복원된 사진. 내부 구조 사진 있음.
- 안동의 문화재, 인금리 심씨댁, 겨울섬, 개인 블로그, 2021.4.6. https://gotn.tistory.com/1156, 2021.4.6. -> 최근 사진.
- 인금리 월오헌 고택 항목 참조 -> 이 집은 청송심씨(靑松沈氏) 악은공파(岳隱公派)의 종택이다. 종택은 한 가문의 맏이가 대대로 살아온 집을 말한다. 인금리에 처음으로 정착한 청송심씨 조상인 심명한(沈明漢, 1654~1711)의 7대손 심동섭(沈東燮, 1846~1924)이 19세기 후반에 건립하였으며, 집의 이름은 심동섭의 호를 따서 월오헌(月塢軒)으로 하였다. 심동섭은 마을에 영락재(暎洛齋)라는 서당을 건립하여 후학의 교육과 학문에 힘썼다. 그의 종손인 심규하(沈楑夏, 1906~1976)는 일제강점기 때 신간회를 조직하는 등 독립운동을 하였다. 1926년 7월 고택에서 동아일보사 6개 군의 지국장 회의를 개최하고 기자단을 조직하여 일제의 잔악상을 취재하였으며, 1927년에는 신간회 안동지회를 조직하여 고택을 항일운동 본부로 사용하였다. / 심씨댁의 심규순과 심규하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을 듯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