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중

거제 구영등성

HeritageWiki
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1년 5월 26일 (수) 06:11 판

이동: 둘러보기, 검색


거제 구영등성
거제 구영등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거제 구영등성
한자 巨濟 舊永登城
주소 경상남도 거제시 장목면 구영리 1249번지 외
지정(등록) 종목 경상남도 기념물 제205호
지정(등록)일 1998년 11월 13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수량/면적 24,497
웹사이트 거제 구영등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이 성은 1490년(성종21)에 왜구倭寇의 침입에 대비하여 쌓았다. 이후 왜구倭寇의 침략을 받아 성이 크게 훼손된 것을 임진왜란 때 다시 수리하였다. 그후 1623(인조 원년)에 지금의 영등永登으로 군진軍鎭을 옮기면서, 이성은 구영등성舊永登城으로 불리게 되었다.

성터는 해안에 위치한 구영마을 남쪽의 야산 기슭 평면에 원추형으로 조성되어 있다. 성벽은 대부분 훼손되고, 겨우 받침대基壇部 부분만 남아 있지만, 성의 구조와 쌓은 방법 등은 어느 정도 확인이 가능하다.

남북 양쪽에 반원형의 성문이 있고, 성문 위에는 몸을 숨겨 적을 공격할 수 있는 낮은 담雉城(성가퀴)이 설치되어 있다. 성문의 입구에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한 작은 성을 쌓아 외부로부터 엄폐하였다.

또한 적의 접근을 막기 위한 도량垓字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지형의 변형으로 지금은 확인이 불가능하다. 성을 쌓는 방법은 조선 전기의 일반 평지에 쌓은 읍성과 같은 형태이며, 외벽은 자연석으로 겉쌓기를 하고 내벽은 막돌로 쌓은 뒤 내벽과 외벽 사이를 크고 작은돌들로 차곡차곡 채워 넣었다.

문헌에 의하면 성의 규모는 둘레가 약 320m정도 였다고 한다.

수정 국문

초고

이 성은 조선시대 성종 21년(1490)에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방어의 목적으로 쌓은 것이다.

거제부 소속의 영등포영(永登浦營)이 있던 곳으로 종4품의 무관인 만호(萬戶)를 파견하여 지키게 하였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크게 훼손되었고, 이후 인조 원년(1623) 둔덕면 영등진으로 옮겼다. 그 후 이곳을 구영등(舊永登)이라 하고, 둔덕면에 있는 것을 영등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 곳 구영등은 거제도의 가장 북쪽으로 진해, 웅천, 가덕도 등 육지와 가장 가깝게 접하고 있으며, 주변에 영등왜성, 구율포성 등 성곽유적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

현재 성벽은 대부분 훼손되고 일부 기단부만 남아 있는 상태이지만 성의 구조와 쌓은 방법 등은 어느 정도 확인이 가능하다. 남북 양쪽에 반원형으로 된 옹성(甕城)을 쌓았는데 그 출입문이 한쪽 옆에 있다. 성의 바깥벽은 큰 돌로 쌓고 안쪽 벽은 돌을 지면에 겹쳐 쌓은 뒤 크고 작은 돌을 차곡차곡 쌓은 방식으로, 일반적인 조선 전기 평지읍성의 축조 방식을 사용하였다.

1차 수정

구영등성은 조선시대인 성종 21년(1490)에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방어의 목적으로 쌓은 것이다.

거제부 소속의 영등포영(永登浦營)이 있던 곳으로 종4품의 무관인 만호(萬戶)를 파견하여 지키게 하였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크게 훼손되었고, 이후 인조 원년(1623) 둔덕면 영등진으로 옮겼다. 그 후 이곳을 구영등(舊永登)이라 하고, 둔덕면에 있는 것을 영등으로 부르게 되었다. 구영등은 거제도의 가장 북쪽으로 진해, 웅천, 가덕도 등 육지와 가장 가깝게 접하고 있으며, 주변에 영등왜성, 구율포성 등 성곽유적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

현재 성벽은 대부분 훼손되고 일부 기단부만 남아 있는 상태이지만 성의 구조와 쌓은 방법 등은 어느 정도 확인이 가능하다. 남북 양쪽에는 반원형으로 된 옹성을 쌓았고, 옹성 한쪽 옆에 출입문을 두었다. 성의 바깥벽은 큰 돌로 쌓고 안쪽 벽은 돌을 지면에 겹쳐 쌓은 뒤 크고 작은 돌을 차곡차곡 쌓은 방식으로, 일반적인 조선 전기 평지읍성의 축조 방식을 사용하였다.


문맥요소

Nodes

Links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