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석정
취석정 Chwiseokjeong Pavil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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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취석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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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Chwiseokjeong Pavilion |
한자 | 醉石亭 |
주소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노동로 191-9 (화산리) |
지정(등록) 종목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53호 |
지정(등록)일 | 1997년 7월 18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취석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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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취석정은 조선 명종 1년(1546)에 고창의 선비 노계 김경희(蘆溪 金景熹 1515∼1575)가 지은 정자이다. 그는 조광조와 외삼촌인 양팽손에게 성리학을 배웠으며 시와 문장에도 뛰어났으나 을사사화(1545)에 연루되어 벼슬길에 오르지 못했다.
‘취석(醉石)’이란 중국 시인 도연명이 술에 취하면 눕곤 하여 파인 흔적이 남았다는 바위에서 딴 이름으로, 욕심 없이 한가롭게 살아가겠다는 뜻이 담겼다.
취석정은 정자 가운데 방을 만들고 온돌을 놓아 추운 겨울에도 머물 수 있게 했다. 정자 아래쪽에는 아궁이와 굴뚝이 남아 있다. 마루 끝에는 계자난간*(鷄子欄干)을 설치하였는데, 난간에는 태극(太極)과 팔괘**(八卦)를 조각하여 이 정자를 우주의 축소판으로 형상화하였다. 빼어난 경치 와 정자 주변에는 취석으로 짐작되는 크고 작은 고인돌들이 있다.
- 계자난간: 계자다리(鷄子多里)라는 부재를 사용하여 난간대를 지지하도록 만든 난간으로 조선시대에 널리 쓰임.
- 팔괘: 중국 상고 시대에 복희씨가 지었다는 여덟 가지의 괘을 의미함.
영문
Chwiseokjeong Pavilion
This pavilion was established in 1546 by Kim Gyeong-hui (1515-1575), a scholar born in Gochang.
In 1534, Kim Gyeong-hui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but during the Literati Purge of 1545 he didn't pursue official positions and returned to this village which was his hometown. After he built Chwiseokjeong Pavilion, he gave sermons on literature with various intellectual elites, wrote poetry, and enjoyed nature here.
The name Chwiseokjeong can literally mean "pavilion on the drunken rock". This refers to the rock where the Chinese poet Tao Yuanming is said to have lied drunk and can be interpreted as living leisurely without greed.
Chwiseokjeong Pavilion has an underfloor-heated room in the middle and if needed, the doors are curved (lifted?) upwards so that it can be used as a wide open space. A hearth and a chimney which were used when heating remain lower than the pavilion. An adjoining wooden-floored porch with balustrades was built on all four sides of the room. The balustrades are carved to look like taegeuk and the eight diagrams and this represents that Chwiseokjeong Pavilion is a small edition (version?) of the universe.
영문 해설 내용
취석정은 고창 출신의 학자인 김경희(1515-1575)가 1546년에 건립한 정자이다.
김경희는 1534년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1545년 사화가 일어나자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고향인 이 마을로 돌아와 은거하였다. 취석정을 지은 후에는 이곳에서 여러 선비들과 학문을 강론하고 시를 지으며 자연을 즐겼다.
취석정이라는 이름은 글자 그대로 하면 '술취한 바위의 정자'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중국 시인 도연명이 술에 취하면 눕곤 하였다는 바위의 이름에서 땄으며, 욕심 없이 한가롭게 살아가겠다는 뜻이 담겼다.
취석정은 온돌방이 가운데에 있고, 필요한 경우에는 방문을 들어올려 넓게 트인 공간으로 쓸 수 있도록 했다. 정자 아래쪽에는 난방을 할 때 사용하는 아궁이와 굴뚝이 남아 있다. 방의 4면에는 난간을 두른 마루를 놓았다. 난간에는 태극 문양과 팔괘의 문양을 새겨놓았는데, 이는 취석정을 우주의 축소판으로 형상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