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 경수당
칠곡 경수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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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칠곡 경수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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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漆谷 敬守堂 |
주소 | 경상북도 칠곡군 상지1길 45-1 (지천면)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83호 |
지정(등록)일 | 2011년 3월 28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5동 |
웹사이트 | 칠곡 경수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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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경수당은 조선 중기 유학자 이윤우*(李潤雨, 1569∼1634)가 살았던 자리에 지어진 가옥으로, 이후에는 대한 제국 법부 형사국장을 지냈던 김낙헌이 거주했다. 원래 지천면 신리 208번지에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 유학자였던 이주후가 매입하고 현재의 자리로 옮겨 오면서 벽진 이씨 후석파의 종택으로 삼았다.
가옥은 웃갓마을의 북쪽 끝에 야트막한 산을 등지고 있다. 대문간채, 사랑채, 안채, 광채가 동향으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고, 남향의 안중사랑채가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 있다. 생활의 편의를 도모하고자 창호를 교체하고 일부 증축하였으나 대체로 가옥의 원형이 잘 유지되어 있다.
특히 경수당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은 ‘담양담’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이윤우가 전라도 담양부사로 재직하는 동안 청빈하게 살며 선정을 베풀자 이에 고마움을 느낀 담양 사람들이 보답을 하고자 직접 찾아 와 담양 지역의 방식으로 특색 있는 담장을 쌓았다는 데서 유래한다.
- 이윤우: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무백(茂伯), 호는 석담(石潭)이다. 조선 선조 2년(1569) 증좌승지 이희복의 아들로 태어나 이이(李珥)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이후 정구(鄭逑)의 문인이 되었다. 선조 39년(1606) 급제하여 성균관전적, 승정원주서, 수성도찰방 등을 역임하다가 대북(大北)의 전횡이 심해지자 사직하였다. 인조반정 이후 예조정랑, 사간원정언, 공조참의 등을 거쳤으며, 여진족에 맞서 변방의 방어에도 힘썼다. 사후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영문
Gyeongsudang House, Chilgok
This house is presumed to have been first built in 1784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It was built on the site of the home of the Confucian scholar and civil official Yi Yun-u (1569-1634) of the Gwangju Yi Clan.
Yi Yun-u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606 and served several posts including as secretary of rites, fourth censor of the censor-general, and third minister of public works. He also helped defend against Jurchens who were attacking the country.
There are many stone walls around the house, which are known as the Damyangdam, meaning the "Walls of Damyang." This comes from the story when Yi Yun-u was serving as the magistrate of Damyang, around 150 km to the southwest. It is said that he ruled with benevolence and generosity, and to repay him, the people of Damyang traveled all the way to Yi's house and built these stone walls for him. Yi was so touched that he made his pen name Seokdam, meaning "stone wall."
The house was renovated in the mid-19th century. Around the turn of the 20th century, the house came into the possession of the Confucian scholar Yi Ju-hu (1873-1957) of the Byeokjin Yi Clan, who slightly moved the buildings and made some renovations at that time, adding red bricks and glass sliding doors. The house underwent a large-scale renovation in 2015 to remove all signs of its early 20th century renovations, resulting in the replacement of all of the structures' walls, windows, and rafters with new timber, leaving behind only the building's original main pillars and beams.
The house is composed of a main gate quarters, a men's quarters, and a women's quarters all aligned in a row from front to back in an easterly orientation. Between the men's and women's quarters is an inner men's quarters which faces south. In the area to the right of the main gate, there was once another building used as a detached men's quarters, but it was damaged in a typhoon and torn down.
The house has been used as the head house, a residence passed down by the male descendants of a family lineage, of the descendants of Yi Ju-hu. It is now used as lodging.
- 2015년 보수 공사 사진 보면 원래 목재 20%도 안 남은 듯해요. 잘 보존 되어 있다고 못 쓰겠어요.
- 원래 20세기 초기 유리 미닫이문, 붉은 벽돌등이 다 있었는데 보수하면서 그 모습은 아예 다 살아져버렸네요.
- 김낙헌 - 친일파
- During the Korean Empire period (1897-1910), the house was owned by Kim Nak-heon (1874-1919), who served as the head of investigation for the ministry of judicial affairs.
- 일단 이 사람 언급 없이 써 봤어요.
- 원래 위치(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리 208-1)와 현재 위치(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리 140번지/경상북도 칠곡군 상지1길 45-1)은 바로 앞뒤어 붙여있는 부지예요;;;;;;;;; 그래서 약 50~60m 서북쪽으로 이전한 거예요. 그리고 아직도 원래 자리에 건물들이 있어서 그 건물들의 정체는 파악하면 좋을 것 같네요. 돌담의 위치(지도 거리뷰)로 봤을 때 이 두 부지 전체는 다 이윤우가 살던 곳 같은데요.
- 위성사진 및 다른 사진 자료로 광채, 방악간이 확인 되지 않아서 그 내용을 뺀 겁니다.
- 중문간/곡간채는 사랑채 옆에 이어져 있음.
- 자료에 의해 '안중사랑채 + 방앗간' 또는 '안중사랑채 + 중사랑채'로 ㅁ자 모양이 절대 만들어 질 수 가 없어요. 중사랑채는 대문채, 사랑채 사이에 있는 중문을 통해 아예 돌담 밖에 있었네요.
- "현재는 철거되었지만 담을 쌓아 영역을 구분하여 은퇴한 노인이 거처하는 별당 성격의 중사랑채에는 동산과 다양한 조경수로 정원을 꾸며 놓았다."
- 보수공사 준공식
- 한옥스테이로 사용하려고 하는것 같아서 아직 종택의 역할을 하는지..
영문 해설 내용
참고자료
- 칠곡 경수당, 디지털칠곡문화대전. http://chilgok.grandculture.net/chilgok/toc/GC02301344[[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