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몽재 유지
훈몽재 유지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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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훈몽재 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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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0 |
한자 | 訓蒙齋 遺址 |
주소 |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 둔전2길 83 |
지정(등록) 종목 |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89호 |
지정(등록)일 | 2012년 11월 2일 |
분류 |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당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1,396㎡ |
웹사이트 | 훈몽재 유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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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기존 국문
사진을 통하여 기존안내문 내용을 정확하게 확인하기 어려움
수정 국문
초고
훈몽재(訓蒙齋)는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 1510~1560)가 1548년(명종 3)에 순창 점암촌 백방산 자락에 지은 강학당이다. 이곳은 그가 처향(妻鄕)인 순창의 점암촌에 이거하고, 초당을 세워 훈몽이라는 편액을 걸고 강학했던 곳이다. 김인후가 훈몽재에 머물렀던 시기는 1548년부터 그가 부친상을 당하여 장성으로 돌아간 1549년까지 약 2년간이다. 이곳에서 고암 양자징(鼓巖 梁子澂, 1523~1594), 월계 조희문(月溪, 趙希文, 1527~1578) 등 당대의 유명한 학자들을 배출하였다. 1680년경 김인후의 5대 손인 김시서가 인근에 자연당을 짓고 기거하며 훈몽재를 중건하여 후학을 양성하였으나, 다시 쇠락하였다. 1820년경 김인후의 후손들이 점암마을에 훈몽재를 중건하고, 어암서원을 건립하여 김인후, 김시서, 정철, 이이의 위패를 봉안하였으나, 대원군의 서원훼철령에 의하여 훼철되었다. 훈몽재와 그 부속건물인 자연당, 양정관, 심연정이 위치하며, 동쪽 추령천변에는 대학암(大學巖)이라고 새겨진 바위가 있는데, 정철(鄭澈, 1536~1593)이 이곳에서 김인후에게 대학을 배웠다는 일화가 전하고 있다.
1차 수정
문맥요소
Nodes
Links
참고자료
- 훈몽재[ 訓蒙齋 ], 향토문화전자대전
http://sunchang.grandculture.net/sunchang/toc/GC05901457
- 훈몽재 유지, 대한민국 구석구석
https://korean.visitkorea.or.kr/detail/ms_detail.do?cotid=32f27411-b785-4a5e-846c-127b6898bdc8
- 훈몽재 유지 (訓蒙齋 遺址),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턿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31,01890000,35&pageNo=1_1_1_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