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풍패지관
전주 풍패지관 Pungpaejigwan Guesthouse, Jeonj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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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전주 풍패지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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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Pungpaejigwan Guesthouse, Jeonju |
한자 | 全州 豊沛之館 |
주소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중앙동3가 1번지 |
지정(등록) 종목 | 보물 제583호 |
지정(등록)일 | 1975년 3월 31일 |
분류 | 유적건조물/정치국방/궁궐·관아/관아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전주 풍패지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전주 풍패지관은 전주에 온 관리나 사신이 머물던 전주 객사(客舍)이다. 조선 시대에는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 예를 올렸으며,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는 축하 의식을 행하였다. 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시는 ‘주관(主館)’과 숙소로 사용하던 ‘익헌(翼軒)*’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관의 처마 아래에는 ‘풍패지관’이라고 쓴 거대한 편액**이 걸려 있는데 이는 전주 객사의 위상을 잘 보여 준다. 풍패***란 건국자의 고향을 이르는 말로,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본향인 전주를 풍패지향이라 하였는데 이를 본따 전주 객사의 이름도 풍패지관이라 한 것이다.
전주 풍패지관이 처음 지어진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성종 4년(1473)에 전주서고를 짓고 남은 목재로 서익헌을 고쳐 지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후 1597년에 발발한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었다가 다시 지었고, 고종 9년(1872)에 보수 공사를 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도로 확장 공사로 동익헌을 철거하여 주관과 서익헌만 남아 있었으나, 1999년에 동익헌을 복원하였다. 현재는 주관과 동·서익헌, 객사를 관리하는 수직사가 남아 있다.
- 익헌: 본 건물의 좌우 양쪽에 딸려 있는 건물
- 편액: 건물이나 문루 중앙 윗부분에 거는 액자
- 풍패: 중국 한나라 고조가 태어난 곳의 지명
영문
Pungpaejigwan Guesthouse, Jeonju
Guesthouses, called gaeksa in Korean, were built nearby local government offices during the Goryeo (918-1392) and Joseon (1392-1910) periods. The guesthouse includes a shrine in the center to hold a wooden tablet symbolizing the king and two rooms to either side which were used as temporary lodging facilities for officials visiting from other regions. The wooden tablet enshrined in each local guesthouse exhibited the king’s sovereignty across the country. To acknowledge this sovereignty, the local magistrate and other officials regularly performed a ceremony in which they prostrated themselves toward the royal capital.
Pungpaejigwan, meaning “Hall of Pung,” was the guesthouse of the Jeollagamyeong Provincial Office during the Joseon period. The guesthouse was named as such because Jeonju was nicknamed Pung, after the Chinese city of Feng, which is the hometown of the founder of the Chinese Han dynasty. During the Joseon period, Jeonju was compared to Feng, as the ancestors of the founder of the Joseon dynasty were from Jeonju.
It is unknown when it was first built, and it is said that the left part was repaired in 1473. After the entire building was destroyed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in 1597, it was reconstructed later at some point and was significantly repaired in 1872.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the right part of this guesthouse was dismantled due to expansion of a nearby road and was rebuilt in 1999. In front of the guesethouse is a custodian’s residence.
영문 해설 내용
객사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고을 관아에 설치했다. 객사는 가운데에 왕의 전패를 모신 정당이 있고 좌우 양쪽에 숙소로 사용되던 익실이 있다. 객사에 모셔진 전패는 왕의 통치권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러한 통치권을 바탕으로 고을 수령과 관리들은 궁궐을 향해 절하는 망궐례를 행했다.
풍패지관은 ‘풍패의 객사’라는 뜻으로, 조선시대 전라감영의 객사였다. 풍패지관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전주가 중국 한나라 고조(高祖)의 고향 이름을 따라 ‘풍패’라고 불렸기 때문이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조상이 대대로 전주에 살았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전주를 풍패에 견주었다.
풍패지관이 처음 지어진 시기는 알 수 없으며, 1473년에 서익헌을 고쳐 지었다고 한다. 1597년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었다가 다시 지었고, 1872년에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도로 확장 공사로 동익헌을 철거하였다가 1999년에 복원하였다. 객사 앞에는 객사를 관리하는 수직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