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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서씨 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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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1년 5월 8일 (토) 01:3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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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서씨 정려
Commemorative Pavilion of Lady Seo
대표명칭 대구서씨 정려
영문명칭 Commemorative Pavilion of Lady Seo
주소 충청남도 청양군 화성면 용당리 산46-2
지정(등록) 종목 청양군 향토유적 제35호
지정(등록)일 2019년 5월 31일
수량/면적 1동



해설문

국문

대구서씨 정려는 판중추부사문정공 서준보의 딸인 대구서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정려는 충신, 효자, 열녀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마을 입구에 세운 건물, 또는 그런 일을 뜻하는 말이다.

대구서씨는 1810년 15세에 조두순**과 결혼하여 60여 년간 시부모를 효성으로 섬기고 남편을 공경하였다. 남편 조두순이 세상을 떠나자 장례를 마치고 남편의 뒤를 따랐다. 1871년 현재의 위치에 정려각을 세워 열행을 기리고 있다.

이 정려각은 일반 정려각과 달리 앞면에 별도의 출입문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 열행: 여자가 곧은 절개를 지키는 행위
  • 조두순: 철종과 고종 대의 정승.

영문

Commemorative Pavilion of Lady Seo


영문 해설 내용

조선시대의 문신 조두순(1796-1870)의 부인 대구서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내려진 정려를 모신 건물이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충신, 효자, 열녀에게 정려 현판 또는 정려비를 내렸으며, 정려를 받은 사람의 집 앞에 붉은 문을 세우거나 정려각을 세워 모셨다.

서씨는 15세에 조두순과 결혼하여 60여 년간 시부모를 효성으로 섬기고 남편을 공경하였다. 조두순은 1827년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고, 1864년에는 최고위 관직인 영의정에 올랐다. 서씨는 평생 복잡한 정사에 임하는 남편의 건강을 살피는 데 정성을 다했다. 남편이 노환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자, 자신의 정성이 부족한 탓이라며 목숨을 끊어 남편의 뒤를 따랐다. 그녀의 열행이 알려져 1871년 정려가 내려졌다.

참고자료